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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한 달 (完)

[김준면 김종인 빙의글] 한 달 04



[김준면 김종인]













더워죽겠다는 인조잔디 끄트머리 쪽에 있는 그늘로 기어가 땀을 말리는 oo. 터덜 터덜- 걸음으로 걸어온 민석은 마실래? 하고 oo에게 물었고, oo 고개를 끄덕이며 물통을 받아들었다. 어쩜 날씨가 이렇게나 더운지, 그냥 미치고 팔짝 노릇이었다. 이런 날씨에 체육을 하는 선생도 이해가 가지 않았고, 놈에 날씨도 이렇게 더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뜀틀 수행평가 치고, 바로 들어가도 된데."


"진짜? 그럼 우리 제일 먼저 치자... 이렇게 있다간 죽을 같아."







체육 창고실에 뜀틀을 가지러 선생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하나 같이 표정에 불만이 가득하였다. oo 재빨리 앞에 줄을 섰고, 뜀틀을 뛰자마자 바로 반까지 뛰어가겠노라 하고 다짐을 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 체육 선생님과 부장이 뜀틀을 가져왔고.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oo 도움닫기를 하였다. 뜀틀은 딱히 어렸을 때부터 어려움 없이 넘어왔던 터라 쉽게 넘을 거라고 예상하였다


뜀틀을 예상대로 정말 넘고, 착지까지도 완벽하게 하였는데 강한 햇빛 때문에 잠시 어지러웠는지, 풀썩- 바닥에 엎어지고 oo였다. 깜짝 놀란 민석, 지은, 그리고 종인이 재빨리 oo에게로 다가와 괜찮냐며 물었고, oo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어지러웠다며 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보건실 가자."


" 수행평가 치지도 않았으면서. 가도 혼자 테니깐, 신경 쓰지마."




일어나서 몸을 바라보니, 팔과 다리가 까져 있었다. 보건실 가서 대충 밴드라도 붙이자 싶어, 어정쩡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소리가 들려 슬쩍 뒤를 돌았는데, 다름아닌 종인이 저를 따라 뛰어오고 있었다




"뭐야."


"수행평가 쳤어. 잡아줄 테니깐 같이 ."


"다리 것도 아닌데, . 괜찮거든."


" 피나."




?! 어렸을 때부터 피는 질색하던 oo였기에, 피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곤 바로 세웠던 꼬리를 내리며, 순순히 종인을 따랐고, 종인이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없는 상황이기에 그냥 아무 않기로 하였다







***







반으로 들어가니, 지은과 민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oo 손을 붙잡고 끌고와서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며 oo에게 물어댔다. oo 자기도 모르겠다는 고개를 좌우로 저었고, 지은은 - 하고 뭔가 비장한 표정을 짓다가도 입을 떼었다




"이번에는 김종인이 꼬실려고 하는 건가? 이제 바람둥이짓 거라면서."


"그건 그렇지만... 믿을 수가 있어야지. 난 아직도 저 자식 싫어, 좀."




치료되어 있는 팔 다리를 바라보니, 새삼스럽게 조금 고마운 마음이 스물 스물 피어올랐다. 생각해보니, 고맙다는 말을 못 했네. 나중에 하면 되겠지, 싶어 oo는 그대로 고개를 책상에 엎드려 버렸다. 


잠을 자려고 했건만, 쉽게 잠에 들지 못 하였다. 중학생 때 있었던 일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때만 해도 종인은 oo에게 잘해준다는 표현은 하였지만, 오직 갖고 논다는 느낌 밖에 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종인의 행동을 보면, 갖고 논다기 보다는 정말로 친구, 또는 연인에게 잘해준다는 식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대해주어야 하는 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크나 큰 문제였다. 


문제가 이거 뿐이면 그나마 다행이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요즘 과외 수업을 할 때, 준면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제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탓에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보니까 곧 기말고사 시즌인데, 머리가 상황 파악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야, 시험 시간표 나왔어. 확인해."




실장의 시간표를 확인하라는 말에, 벌떡- 몸이 일으켜진 oo는 게시판에 붙여져 있는 시험 시간표에 눈을 갖다 박는다시피 바라보았다. 세상에, 영어가 첫 날이네. 준면에게 시험 시간표를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니, 금세 답장이 왔다. 첫 날이네, 라며 빡시게 해야겠다는 말들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준면과 여태동안 한 문자 내용들을 봤는데, 




"..."




[ 쌤 수업 언제 시작해요? ]


[ 쌤 오늘 말고 내일 시간 되세요? 오늘 약속 생겼어요 ㅠㅠ ]


[ 쌤 내일 수업 맞죠? ]




오늘 문자도 포함하여 죄다 수업에 관련된 내용 밖에 없었고, 사적인 내용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뭔가 아쉬워져, 말을 바꿔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준면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절대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종인에게 말해버리면 큰 일이였기에 그냥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어우, 첫 날 좀 봐. 영어 확통 법정 윤리... oo야, 너 공부 다 할 거야?"


"...영어만 해야지."







***







oo는 전혀 여자로 보이지 않는 건지, 윗통을 까버린 채로 차가운 냉수를 꿀꺽 꿀꺽- 마시는 종인이다. 그 모습을 한심스럽게 고개를 내저으며 바라보던 oo는 준면에게 대체 언제 오냐고 전화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긴급 회의가 생겨버렸다는 준면의 말에, 지금 연락을 해봤자 어차피 연락이 제대로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하였기에.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마냥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마실래?"


"됐어."


"이거 먹을래?"




냉수를 흔들거리며, 마실래? 하고 묻는 종인에게 바라보지도 않고 바로 됐다며 고개를 내젓는 oo다. 그러다가도 이번에는 oo가 죽고 못사는 아이스크림 봉지를 잡고 흔들거리는 모습에 oo는 멀리서도 바로 그것이 아이스크림이라는 걸 알아챘는지, 순식간에 종인에게 다가가서는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아이스크림을 낚아채었다. 




"뭘 쳐다봐, 봐도 안 줄 거야."




다시 소파로 앉아,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자꾸만 멀리서 종인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그만 쳐다보라는 듯 봐도 안 줄거라며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종인의 웃음 소리가 귓 가에 들려왔다. 뭐가 그리 좋아서 웃는 거야? 하나도 안 웃긴데 말이야. 




"야, 너 몰랐는데, 엄청 귀엽다."







"어쩌라고. 넌 안 귀여워."




종인과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얼른 준면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을까. 띠리링- 하는 현관문 여는 소리와 함께, 많이 기다렸어? 하고 미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 준면이 oo를 바라보았다. oo는 재빨리 소파에서 일어나서는 별로 안 기다렸다며 쭈쭈바를 계속 쪽쪽- 빨아댔다. 




"쌤, 저 시험 잘치면 뭐 해주시면 안 돼요?"


"응? 뭐 하고 싶은 거 있어?"


"...그런 건 딱히 없고, 그냥 쌤이랑 놀러 가고 싶어서요. 만날 날 별로 안 남았잖아요."




oo의 말에 준면은 흔쾌히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수를 정해야 되는데, 준면은 자꾸만 100점을 요구하였고 oo는 100점은 절대로 불가능 하다며 계속 깎고 깎고, 올리고 올리고, 그러다가 결국 아주 세세한 87.5점을 목표로 하였다. 




"87점 정도는 당연히 맞는 거 아니야?"


"87점은 쉽지만, 87.5점은 힘들어요."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쭈쭈바를 손바닥으로 탈탈 털어 남김 없이 먹던 oo를 보더니, 준면은 웃음이 빵- 터져버렸다. 당연히 농담이었지만, oo는 사실 87.5점은 최소 불가능이라고 생각하였다. 준면과 데이트는 물 건너갔네, 라는 생각을 하며 허탈한 표정을 아주 잠시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