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08

큥큥 뛰어다녀 2017. 4. 30. 16:16



홍일점













이상하게 학교 가는게 참 두려워졌다. 아, 이상한게 아니지. 정상이지, 원래부터 이랬으니까. 아, 정말 혜리랑 세훈이가 간절하게 보고 싶은 날이다. 등교하는 길이 하도 조용하길래 내가 너무 걱정한건가,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 오자마자, 누나! 하는 깐죽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앞을 바라봤는데, 그 김종대라는 녀석이 아무래도 선도부였는 모양이었다. 



"누나는 아침에도 완전 귀엽네요! 공 맞은 건 괜찮아요...?"



처음에는 귀엽네요! 하고 토끼같이 말해오다가도, 곧 내가 공 맞았다는 사실이 기억난 모양인지, 주눅은 토끼의 모습을 하더니 공 맞은 곳은 괜찮냐며 조금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 사실 하루 자고 나니깐 완전 멀쩡해지긴 했는데.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면 ooo가 아니지.



"어... 근데 아직 머리가 좀 어지럽네. 그래도 괜찮아."


"...아, 진짜요? 어떡해, 학교 나와도 괜찮은 거예요?"


"야, 그정도는 아니거든... 나 들어간다."




"네, 누나 제가 초코우유 사갖고 갈게요! 누나 3반 맞죠? 찬열 형이랑 같은 반."



언제 내 반까지 다 알아냈는지, 혹시 내 정보가 줄줄 새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살짝쿵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초코우유를 받는 거라면, 뭐라도 안 좋을까,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에, 뒤에서 ooo! 하는 경리 목소리가 들려, 경리와 함께 교실까지 올라갔다. 



"너 머리는 괜찮고? 애들 말 들어보니깐 종대 그녀석이 너 걱정 많이 한다고 그러던데..."


"응, 오늘 아침에도 완전 걱정스럽게 물어보던데. 사실 완전 멀쩡했는데, 좀 어지럽다고 구라쳤어."


"허걱스, 좀 불쌍한데 그래도 재밌네. 야, 며칠간 좀 놀려먹어. 그래도 지 잘못인데, 누구 탓 하겠어?"



죄책감이 살짝 들려고 하는데, 경리의 말에 힘을 업어 더더욱 죄책감 따위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경리와 헤어지고 반에 들어오니, 문을 열기도 전에 시끄러운 박찬열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쟤는 아침부터 뭔 할말이 저렇게 많은지, 휴대폰이 터지도록 말하고 있었다. 누구랑 전화하는 지 따위는 아예 신경 밖이었는데,



"어, 형 oo 방금 왔어요."



허걱스, 아무래도 내 얘기를 저렇게 스스럼없이 하는 걸 보니, 우리 오빠랑 전화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빠가 꽤나 내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게 진심이였을 줄이야. 현아 언니한테 들은 오빠의 진심이 뭔가 조금씩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 오빠 좀 귀엽네. 공 한번 맞았다고 주위에 걱정해주는 사람이 되게 많아서 왠지 모르게 좀 뿌듯(?)해졌다.





***





"달리기 하면 하나만 해도 돼?"


"아니, 계주도 상관없이 2개 항목 해야 해."



아씨, 젠장. 며칠 후면 체육대회가 다가온다. 체육을 좋아하지만, 체육대회에는 딱히 흥미가 없으므로 혹시 계주 1개만 하면, 나머지 1개는 무효가 될 수 있나 싶어서, 체육부장한테 물었는데 역시 단호한 체육부장님.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내가 먼저 계주 칸에 이름을 적은 바람에 계주 마저도 되돌릴 수 없었다.



"오, 짝꿍 너 계주하게? 그럼 나도 해야겠다."


"너 달리기 엄청 못하게 생겼는데?"


"쯧쯧, 나 완전 우사인볼트 급이야. 못하는 애는 여기 있고."



못하는 애는 여기 있고, 라며 자기 앞에 있는 경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경수가 달리기를 못한다고? 어떡해, 너무 귀엽겠다! 경수가 달리기를 잘하든 말든, 둘 다 너무 귀엽고 멋있을 것 같아, 경수를 적극 계주를 시키고 싶었지만 이미 경수는 2가지 항목을 다 정해버렸다고 하더라...


결국 나는 400m 계주와 2인3각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 조금 걱정되는 게 있다면 박찬열도 나랑 똑같이 신청을 했던데, 키만 멀대같이 큰 박찬열이랑은 절대 파트너가 될 리가 없겠지? 분명 키를 맞추기 위해, 당연히 여자는 여자끼리 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는 2인3각을 선택한 과거의 나에게 하지 말라고 싸대기라도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그거 우리반에서는 키 맞는 남녀가 같이 한다고 했어. 박찬열이랑은 키차이 많이나니깐 너무 걱정하지마."


"...아, 진짜? 그래, 그나마 다행이다."



나랑 비슷한 키에 남자 애랑 하겠지, 싶어 경리의 말을 듣고 한시름 놨다. 그리고서 교실로 들어갔을 땐, 손바닥을 내밀고 있는 박찬열의 우스꽝스러운 개구쟁이 같은 얼굴이 나를 반겼다. 무슨 뜻으로 나한테 손을 내미는 건지, 고개를 멀뚱히 들고 있는데 옆에 있던 경수가 나에게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음, 그리고 '불쌍하다' , '힘내라' 하는 표정을 담아서. 



"다른 반은 키대로 고른다고 하던데, 우리 반은 대포로 뽑았데. 근데 너랑 나랑 운명 같이 파트너가 됐고."


"...뭐? 우리 반은 왜 이렇게 요란하게 뽑았냐, 평범하게 갈 것이지... 너가 말했어?"




"설마, 나도 방금 쉬하고 들어왔는데 체육부장이 나한테 줬어."



체육부장 녀석이 나를 무척 싫어하는 애가 틀림없다. 그런게 아니면 나랑 박찬열을 붙여놓을 리가 없지. 아, 물론 일단 대포 녀석이 가장 잘못한 일이긴 하지만. 경리의 말을 듣고 한시름 놨는데, 과거의 나에게 정말 헛생각 하지 말라는 충고라도 해주고 싶었다. 



"야, 아니 안쪽 발부터라고 했잖ㅇ, 악!"


"어어, 괜찮아?"



이 키만 멀대같이 큰 자식! 차라리 400m 계주 연습을 할 때, 달리기를 주구장창 하는 게 훨씬 덜 힘들 것 같았다. 이렇게 덩치만 크고, 정신연령은 18살이 아니라 8살 같은 이런 애를 데리고, 2인3각 연습을 하려고 하니깐 정말 힘들었다. 분명히 시작하기 전부터, 안쪽 발부터라고 그렇게 윽박을 질렀건만. 내 목소리는 안중에도 없었는 모양이다. 아, 내 인생... 경수 보고 싶다. 



"어, 경수야!"


"아, 도경수 앞길 막지 말고 비켜라~"



정말 나랑 경수는 운명이라도 되는 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마자 귀여운 밤톨머리가 땀으로 살짝 젖어있는 경수가 내 앞으로, 아 정확히 말하면, 나랑 박찬열 앞으로 뛰어왔다. 근데 박찬열 이자식이?



"oo 너 위에 옷 사이즈 뭘로 할까?"


"어?"


"우리 져지 입기로 했거든. 여자는 자주색, 남자는 파란색으로. 아까 너희 둘만 없어서 못 정했는데, 애들 다 찬성했어."


"아... 나 그냥 여자애들 한 거랑 똑같이 해줘. 적당한 사이즈로."



경수를 오래 못 봐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물론 반 전체가 하는 반 티이긴 하지만, 커플옷이 생기는 거잖아? 아, 그 말은 즉슨 내 옆에 있는 8살짜리 얘랑도 커플옷이 생긴다는 거지만... 그것만 빼면 정말 좋다, 그치?



"짝꿍아, 너 져지 입고 오면 엄청 귀엽겠다."


"닥쳐, 안쪽 발부터 떼기나 해."





***





나는 이 팥죽색 져지가 참 마음에 안 들었지만, 옆에서 경수가 계속 잘 어울린다고 귀엽다고 해줘서 참는 건 절대 맞다. 그래, 경수한테만 잘 보이면 되지, 더 있어? 체육대회 날씨는 적당히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아서 달리기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짝꿍아, 져지 완전 잘 어울려!"




"응, 안쪽 발부터 떼라, 너! 까먹으면 죽여버릴 거야!"



금붕어가 아닌 이상 이렇게 맨날 맨날 체육대회 전날까지도 발 떼는 연습을 했으면 안쪽 발이라는 건 지나가는 개미도 다 기억하겠다. 박찬열 때문에 우리 반이 이기는 건 큰 무리가 있을 것 같아, 그냥 체육대회 핑계를 가지고 경수랑 사진이나 많이 찍자는 생각이 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짝꿍아, 이거 마셔."


"나중에 달리기 하는데?"


"아아, 너 달리기 하려고 하면 멀었는데? 그거 점심시간 끝나고 하잖아, 계주."


"나 박찬열이랑 2인3각 뛰어."



옆 반 변백현은 내가 박찬열이랑 2인3각 뛰는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있었나 보다. 그게 아니면 저렇게 충격적인 표정으로 멍을 때릴 리가 없지. 하긴, 내가 그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며 박찬열과 경수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쪽팔리는 꼴은 아무한테도 보여주기가 참 싫었거든. 


2인3각은 오전에 생각보다 일찍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그래도 아직 체육대회 절정이 되기 전에 시작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발 지점에 서서, 나는 음성사전 처럼 '안쪽 발' 만 아까 전부터 한 100만번 정도는 말한 것 같다. 이래도 박찬열은 분명 바깥 쪽부터 뗄 거야. 나는 이번에도 박찬열이 바깥쪽 발부터 뗄 것 같아, 내가

 초고수적 방법으로 나도 바깥쪽 발을 먼저 떼기로 하였다. 



"너 잘 뛰어야 해."


"응, 찬열 님의 달리기 실력을 보여줄게."


"응, 그래. 그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줄, ...어엇!!"



아, 씨발...! 난 당연히 박찬열이 바깥쪽 발을 먼저 떼겠지, 싶어서 당연히 바깥쪽 발을 먼저 뗐는데 생각 외로 박찬열은 내 말을 듣고 있었는 건지, 처음에 내가 말한대로 안쪽 발을 떼는 아주 착한 엿같은 일을 해버렸다. 평소에 연습하던 때라면 괜찮지만, 우리 둘 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많이 앞으로 가 있었고, 박찬열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난 그대로 발목을 삐어버렸다.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아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어, 야야! 이거 안 놔?!"



갑자기 가만히 있던 박찬열이 나를 들어올리더니, 2인3각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그냥 다 무시한 채 뛰고 있었다. 아, 달리기 완전 느린 줄 알았는데, 좀 제법이네. 아, 맞다. 나 얘랑 뛰어봤었지? 





***





"oo야, 괜찮아...? 미안, 나 때문에..."


"...이게 왜 너 때문이야, 내가 바깥쪽 먼저 뗐잖아."


"내가 그 전에는 네 말 안 들어서 너도 그런 거잖아. ...미안해."



2인3각 경기가 끝나자마자 박찬열은 곧장 그 자세 그대로 보건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나를 의자에 앉히고, 박찬열은 밑에 쭈그려 앉아서 내가 치료 받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비를 쫄딱 맞은 대형견 모습으로 나를 보는 게 참 웃겼다. 다행히도 심하게 삔 건 아니라서 부축을 받으면 아예 걸을 수 없는 정도는 아니었다. 박찬열의 부축을 받으면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박찬열 팔 쪽에 붉은 상처가 눈에 띄었다.



"어, 야 너 팔에 상처 뭐야?"


"아, 이거... 아무 것도 아닌데?"


"피 흐르고 있는데? 방금 생긴 거 아니야? 아, 뭐야. 나 때문에?"


"아니, 너 때문에 아니야."





"...나 때문에 맞네. 아씨, ...많이 아파?"



내 치료가 끝나자마자, 보건 선생님을 내가 붙잡아, 얘도 치료 좀 해주세요, 라며 말했다. 보건 선생님이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하하. 갑자기 박찬열이 날 들어올리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발버둥을 치다가 낸 상처 같았다. 



"하나도 안 아파. 걱정하지마, 짝꿍 표정 완전 우울모드 됐어..."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진 모양이었다. 박찬열도 나를 따라 표정을 굳히더니, 표정을 풀라며 나를 위로 올려다 보았다. 서로 치료를 다 받고, 단상에서 내려오는데, 너넨 왜 쌍으로 다쳤냐? 라는 식으로 우리를 보고 있는 경리와 눈이 마주쳤다. 



"oo 너 다쳤어?"


"어? 아, 아니... 그냥 살짝 삔 정도?"


"뭐? 야, 박찬열! 너 oo 똑바로 안 지키고 뭐했어? 그래놓고선 네가 무슨 oo 보디가드냐!"



보디가드?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경리 쟤 방금 박찬열 치료한 팔 때린 거 아닌가...? 아, 어쩐지 엄청 아파하네... 처음으로 박찬열이 불쌍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