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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빙의글] 비단향나무꽃 ː 영원한 아름다움 02

큥큥 뛰어다녀 2017. 5. 6. 08:27



비단향나무꽃 ː 영원한 아름다움


부제、그 시절 내가 좋아한 남학생













고3이 되고 나니까 공부 빼고 다 재밌는 것 같아서 난 맨날 맨날 시간이 빌 때마다 운동장으로 내려와서 슬기랑 함께 배드민턴을 쳤다. 덕분에 엄청 말랑하던 내 팔이 조금은 단단해짐을 느꼈다. 팔이 단단해진 것처럼 변백현을 볼 때마다 내 심장도 떨리다 못해, 시간이 멈춘 것처럼 굳어진 것 같았다.


벚꽃이 필 때가 되면 왜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는 지 모르겠다. 봄비라서 그런가? 비가 오니, 운동장에서 배드민턴을 제대로 못치게 되었다. 운동장 입구 앞에서 슬기랑 쭈그려 앉아 배드민턴 채를 손에 꼭 쥐고, 내리는 비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오늘도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고 있는 변백현의 얼굴이 보였다. 나도 네 옆에 있고 싶은데...



"토요일에 너 학교 와?"




"당연히 가야지... 시험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벌써 4월이 밝은 지도 아예 모르고 있었다. 4월 말이면 중간고사가 다가오기에, 이제 놀 겨를도 얼마 없었다. 집에서는 하라는 공부를 잘 하지 않기에, 나는 학교에 나올 수 있는 날이면 꼭 나와야 했다. 내일이면 주말이라 변백현을 볼 시간이 얼마 없다. 물론 변백현도 토요일에 학교에 나오긴 하지만, 평일처럼 이렇게 많이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





"아... 5시까지 완전 시간만 버린 것 같다. 너 공부 좀 했어?"


"오전에는 잘 됐는데... 점심시간 지나고 나니깐 진짜 집중이 아예 안돼."



오전에는 오늘따라 공부가 너무 잘 돼서 오늘 정말 날인가, 싶었는데 역시나,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놀았던 탓에 잠이 그렇게 솔솔 오더라. 10분만 잔다는 게, 그만 1시간을 넘게 자버려서 그냥 오후 자습시간은 통째로 날려버렸다. 5시까지 자습을 다 하고, 집에 가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오랜 만에 김태형한테서 문자가 왔다.



[ 너 어디야? ]



맨날 맨날은 아니지만, 꽤 자주 연락을 주고 받는 사이라서 그냥 아무 생각없이 집, 이라고 아주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더니 난 순간 이 세상이 멈춰버린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다음 든 생각은, 나 정말 자퇴해야 할까? 하는 진지한 고민이었다. 



[ 너 변백현한테 관심있냐? ]



"...미쳤다..."



물론 평소에 김태형이 눈치가 빠르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근데 아예 티를 안 내고 다닌 줄 알았는데, 이렇게 김태형이 알아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백현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슬기 밖에 없는데, 슬기는 절대 말할 아이가 아니였다. 아, 어떻게 말해야 하지...



-"어, 왜."


"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봐?"


-"어? 아, 아니 그렇게 보이길래, 혹시나 하고."



다행이다. 확신은 아니였다. 태형이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태형이는 변백현이랑 친구라서 여러가지 도움을 많이 줄 수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알려주기가 껄끄러웠다. 태형이랑 안 친해서가 아니라, 변백현이랑 친해지기에는 내가 너무 미안해서. 나 같이 평범한 애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변백현은. 



"아... 그냥 귀엽게 생겼길래 몇번 봤는데..."


-"아, 그렇구나. 혹시 마음 있으면 바로 말해. 변백현 내 왼팔이거든."


"...왼팔? 풉, 알겠어. 고마워."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이불 속에 쏙 들어가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계속 변백현 얼굴이 구름처럼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아, 쉽게 잠에 들 수도 없었다. 평소에는 주말만 기다렸지만, 이제는 주말보다는 학교에 가는 평일이 훨씬 더 좋아졌다. 





***





원래는 얼굴만 마주쳐도 정말 하늘에 날아갈듯이 기분이 좋았는데, 점점 갈수록 우울함이 커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울했다. 내 마음 한편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절대 우리는 가까워질 수 없겠지, 하는 생각이 내 머릿 속을 차지해서 그런가. 언젠가는 내 추억 속에 일부가 되어버릴 변백현을 생각하니 슬퍼졌다. 



"너 오늘 왜 이렇게 우울해 보이냐?"


"어...?!"



방송부 모임 때문에 슬기가 방송실에 가있는 동안, 운동장 앞에 혼자 앉아있는데 갑자기 어깨동무를 해오는 손길 때문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어?! 하고 큰소리를 내버린 것 같다. 태형이가 얼굴을 너무 가까이 들이 밀어오길래 더 깜짝 놀라서 걔 얼굴을 나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꾹- 밀어보였다. 그제서야 알게 된 사실인데, 태형이 옆에 앉아 있던 변백현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야, 넌 뭘 웃냐?"




"아, 쟤 반응이 웃기길래."



변백현이 급식으로 나온 사과 주스를 쪽쪽- 마시며 웃는데, 너무 귀여워 보였다. 나랑은 얘길하지는 않지만, 왠지 간접적으로라도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들어 심장이 터질듯이 두근거렸다. 내가 아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가만히 있는게 이상해 보였는지, 김태형은 또 다시 얼굴을 들이밀며, 너 아파?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왔다. 



"아, 아픈 거 아닌데...?"


"그래? 아까는 표정이 좀 안 좋던데, 나 보니깐 기분 좋아졌어?"




"...헛소리 하네. 공부나 해, 시험 기간인데."



변백현한테는 이런 거친 말(?)이 들리면 안 되니깐, 태형이한테만 들릴 크기로 거의 속삭이다시피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말과는 달리 싱글벙글이었지만. 얼마 후에 태형이와 변백현은 반으로 올라갔고, 슬기와 나도 반으로 올라왔다. 잠시 우울하던 마음이 정말 다 사라진 기분이다. 변백현을 추억 속 일부로 만들어야 할까, 하는 고민은 잠시 접어두어야겠다. 





***





원래 야자는 10시까지인데, 3학년은 11시까지 자유롭게 하게 해준다. 시험기간이 다가오니, 원래 10시까지 하던 나도 조금은 다급해졌는지, 11시까지 자발적으로 남으려고 했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너에게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커서 그런 걸까, 변백현이 보여도 최대한 기쁜 마음을 추스리려고 노력했다. 그때마다 김태형이 보이길래, 얼마나 힘들었는지...


석식 시간에도 친구와 먼저 올라와서 양치를 하고, 복도를 돌아다니는데 네가 또래교사를 하고 있다는 소식에, 몰래 보려고 뛰어갔지만 엇갈려 버렸다. 이렇게 멀리서 볼 수 밖에 없는 내가 참 미웠다. 



"오, 너 11시까지 하게? 끝나면 뭐타고 가는데?"




"걸어가야지, 지하철은 내리면 멀잖아."




"야, 늦잖아. 우리 엄마 차 같이 타고 갈래?"


"에, 아니 괜찮은데? 그리고 슬기가 11시에 바로 나오면 막차 탈 수 있다고 그랬어."


"그래도 피곤하잖아. 어차피 우리 엄마 너 좋아하니까 같이 타고 가자. 알겠지? 나 엄마한테 말한다? 열공해!"



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태형이 혼자서 알아들었다는 듯 나에게 공부를 잘하라며 내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교실로 재빨리 쏙- 들어가버렸다. 물론 차를 타고 가면 피곤하지는 않게 집에 도착할 수 있겠지만 조금은 미안했다. 오늘따라 계속 엇갈리나 싶었는데, 심자를 하려고 4층에 있는 동안 변백현을 너무 가까이에서 봤다. 변백현은 교무실 앞에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교무실 앞에서 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시간이 난 영원히 멈췄으면, 하고 바랐는데 헛된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