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09

큥큥 뛰어다녀 2017. 6. 3. 00:12



홍일점













"나 왔어."



아, 무슨 체육대회 트로피 주제에 왜 이렇게 무거운 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걸 왜 내가 들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 트로피는 우리반이 다 같이 열심히 해서 받은 건데 왜 내가 들고 가냐고! (물론 본심은 그게 아니라 무거워서였다.) 아무튼 간에, 나한테 이 트로피를 선사하고 간 박찬열을 죽을 때까지 저주를 내려볼까, 했는데 타이밍이 참 거지 같게도 박찬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음, 가뿐히 무시!"


"혼자 뭐래, 야 근데 너 발목은 왜 그래?"




"아, 뛰다가 삐었는데 아무렇지도 않네."



아무렇지 않은 건 구라지만, 오빠의 잔소리 폭격에 맞기 싫어서 나도 모르게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였다. 아, 오빠랑 같이 18년동안 살다보니까 거짓말만 엄청 느는 것 같네. 아나! 박찬열 전화를 가뿐히 무시하고 있었는데, 오빠랑 얘기를 하는 이와중에도 계속 전화가 오고 있었다. 이새끼는 전화하는 게 귀찮지도 않나? 진짜... 답이 없다. 



"뭐, 넌 내가 전화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할려고 그랬냐?!"


-"음, 정답! 짝꿍아, 발목은 괜찮아? 정형외과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야, 너 아까 나 걷는 거 봤잖아. 멀쩡하니까 신경 끄셔."



왜 이렇게 내 주변에는 오바하는 사람이 가득한 지 모르겠다. 정작 당사자인 내가 멀쩡하다는데-. 오빠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못참겠다는 듯 나는 방으로 피신하였다. 아, 근데 주변에서 걱정을 받아서 그런가? 뭔가 발목이 조금씩 더 아파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이 사람들 따라서 김칫국 마시는 게 적응이 돼버린 건가?





***





"..."


"왜 안 받아요, 누나. 아침부터 늦을 거 각오하고 편의점 다녀온 건데."


"하, 누가 사오랬냐..."


"네? 뭐라구요?"


"아니다, 고마워."



아침부터 교문 앞에서 꼬맹이 하나를 상대하느라 진을 쏙 뺐다. 혹시나 오늘도 김종대 이녀석한테 걸릴까봐, 조심스럽게 아무도 모르게 귀신같이 교실로 재빨리 올라가려던 내 계획은 이미 다 망쳐진 지 오래였다. 바로, 누나! 하고 들려오는 장난꾸러기 같은 목소리에 나는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몸을 잔뜩 움츠려버렸다. 그리고는 쥐똥만한 목소리로, 누가 사오랬냐... 하고 말하는데, 아 하마터면 순한 양한테 상처를 줄 뻔 했네. 



"어, oo 오늘은 바나나 우유네? 맨날 누가 주는 거야?"




"아... 귀찮은 애, 하나 있어."




"헐, 설마 남자?"


"남자면 어떡할래, 네가 좀 떼줄래?"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말한 건데, 박찬열 얘가 드디어 미쳤는지 제발 떼놓게 해달라며 내 팔을 붙잡고 덩치에 맞지 않게 데롱데롱 메달려 대고 있었다. 아, 시발... 진짜 다시 한번 느끼는 건데, 내 입이 문제다. 내 주둥이를 다 막아버리던가 해야지. 주둥이가 문제야. 앞으로 아무 말도 안 해야겠다, 정말로. 



"oo야, 누군데? 귀찮은 애, 내가 바로 떼줄게."


"저번에 내 머리에 공찬 애. 나 귀찮으니까 이제 말 안 한다!"



이제 정말 아무 말도 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며 나는 바로 책상에 고개를 숙여 누워버렸다. 근처가 조용한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는데, 시발 박찬열이 없다. 이새끼 분명 김종대한테 갔을게 분명하다. 박찬열 또한 김종대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까. 설마 박찬열이 개념없이 막말을 할까, 싶었는데 걔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아, 시발 몰라-. 알아서 잘 되겄지, 뭐-. 안 그ㄹ,



"야, oo한테 말 걸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형님한테 개겨, 이게?"


"형님은 무슨! 형 우리 누나한테는 맨날 기어다니면서, 쫄보 주제에."



아니네^^. 이것들이 싸울 거면 좀 멀리 떨어져서 싸우던가. 왜 우리반 바로 앞에서, 대화 내용까지 다 들리게 싸우는 거냐. 유치해서 못 들어주겠다... 할 수 없이 몸은 나가지 않고 고개만 빼내어서 싸움을 지켜보는데, 싸움이라고 말하기에도 쪽팔린다. 이건 그냥 초딩들끼리 하는 쎈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김종대한테 누나도 있구나?



"야, 현아 누나 요즘 나한테 엄청 잘해주거든? 그리고 그 누나, oo 완전 좋아해."


"누나가 oo 누나 좋아하는 게 무슨 상관이래-."



현아 누나? 설마 내가 아는 그 현아 언니? 시발, 설마? 그 민석 오빠의 누나, 그 현아 언니? 미쳤어? 이건 말도 안 된다. 무슨 족보가 꼬여도 이렇게 꼬이다니. 나는 왜 여태까지 민석 오빠만 알고, 이 두사람은 왜 정체도 모르고 살았을까. 내가 민석 오빠네 집에서 꽤나 놀았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이 사실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그게 가장 놀라웠다. 



"아, 몰랐구나. 종대랑 민석이 형이랑 현아 누나 셋이 남매야."


"와... 경수 너 계속 알고 있었어?"


"응, 나는 3명 다같이 알게 됐거든. 근데 셋이 좀 안 어울리긴 하지, 놀랄만 해."



박찬열이랑 김종대, 이 두명은 가뿐히 무시하고 다시 교실로 들어와 경수를 붙잡고 내가 방금 들은 헛소리 같은 게 진짜냐며 물었더니만, 진짜였다. 믿을 수 없어. 그렇다면, 정말 만약에. 우리 오빠가 현아 언니랑 결혼한다면, 난 민석 오빠랑 김종대랑 가족이 된다는 거야? ...절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두 사람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내가 발 벗고 말려야겠다. 





***






"헤? 종대가 그랬었구나. 미안, 내가 대신 사과할게. 걔가 하도 어린 애 같아서 말이야, 맨날 나대기만 하고... 그래도 착하긴 해."


"음, 맞아요. 착하긴 한 것 같은데, 착하기만 해요."


"풉-. 맞아, 정답. 근데 걔가 모든 사람들한테 잘해주진 않는데, oo 네가 마음에 들었나 봐. 하긴 민석이도 너 좋아하고, 나도 너 좋아하고. 너 인기 되게 많네?"




"하하, 쑥쓰럽네요. 아, 근데 아침마다 맨날 먹을 거 줘서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진작에 현아 언니한테 다 일러바치는 걸 왜 생각을 못했지? 역시 난 오빠를 닮아서 바보멍청이야... 아무튼 오랜 만에(?) 현아 언니를 만나서 수다를 떠는데, 언니가 사준 초코 라떼가 너무나 맛있었다. 내 주위에 현아 언니 같은 사람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잡생각도 잠깐 했다. 



"언니, 오빠가 잘해줘요? 막 약속 안 지키고, 그러진 않죠? 하긴 우리 오빠 주제에 그러면 안 되지만."


"에이, 엄청 잘해주지. 준면이 같은 남자 없을 걸? 너 걱정도 되게 많이 하고. 어젠가? 너 발목 다쳤다면서 속상하다고 그것도 말해줬어."


"헐... 진짜 우리 오빠지만 너무 소름 돋는다, 내 앞에서는 걱정하기는 무슨... 혹시 우리 오빠 이중인격 아니예요?"



내가 말했지만 너무 소름돋았다. 진짜 맞는 거 아니야? 하지만 얼마 있지 않아, 내 생각이 미친 생각이라는 걸 인정했다. 왜냐고? 그냥... 말도 안 되는 것 같아서. 아무튼 현아 언니랑 보충 시간 내내 수다를 떨다가, 학교로 들어왔는데 박찬열이, 짝꿍 어디 갔다왔냐며 내 어깨를 붙잡고 계속 흔들어댔다. 시발... 괜히 학교 들어왔어. 그냥 집 갈걸.



"아아, 제발 좀! 어지럽다고! 현아 언니 만나고 왔어, 왜."


"폰은 왜 책상에 그대로 두고 가! 폰이 폼이야?"



오, 이새끼 라임 맞추는 거 보소.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그나저나 내가 휴대폰을 놔두고 갔었구나. 생각도 못했다. 현아 언니가 학교 앞이라길래 서둘러서 나가는 바람에 손에 폰이 있는 지도 모르고 그냥 나갔었나 보다. 얘는 이런 걸로 호들갑이래. 만약에 폰 안 들고 오는 날이면, 그냥 나는 박찬열한테 어깨 탈골 당해서 죽을 지도 모르겠네.





***





"뭐? 내가 왜?"


-"어쩔 수 없지, 짝꿍이 트로피 들고 있는 걸?"


"야, 내가 들고 가고 싶어서 들고 갔냐? 네가 계속 들고 가라고 나한테 시켰으면서! 너 다 알고 있었지?!"


-"아니야, 나 진짜 몰랐어. 경수한테 들었는데 너한테 안 말해준 건 비밀이야."



야, 시발!! ...끊겼다. 밤에 신나게 싱어송을 하며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박찬열의 전화가 오더니만 하는 소리라고는 트로피랑 같이 인증샷을 찍어서 지한테 보내라질 않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내가 들고 가고 싶어서 트로피를 들고 온 것도 아니고. 박찬열 이 자식이 알고 있었으면서 나한테 트로피를 줘? 이건 백프로 노린 거다. 그래, 분명하지. 


절대로 박찬열의 꼼수대로 넘어갈 순 없다. 나는 책상 위에 대충 올려놓은 트로피를 들고서 오빠 방으로 무작정 들어가, 트로피를 좀 들고 있어달라며 내가 생각해도 되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오빠한테 졸라댔다. 오빠는 역시나 내 애교를 듣기 역겨웠는지, 금방 내 부탁대로 트로피를 들고서 친절히 포즈까지 취해주셨다. 완벽해. 



"흐흐흐, 시발 너무 행복해."



[ 짝꿍아!!!! 형 사진 말고 네 사진 보내야지! 다시 보내기^^ ]



"응, 엿먹어! 빨리 자야지."



박찬열 답장은 가뿐히 무시하고, 나는 그대로 침대로 고고씽하여 잠에 들었다. 나는 당연히 트로피랑 인증샷을 찍는 게, 박찬열이 꾸민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내일 아침 경수한테서 그 말이 진짜라는 걸 듣게 된 건, 안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