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12

큥큥 뛰어다녀 2017. 7. 5. 17:54



홍일점













아니, 글쎄... 혜리랑 박찬열은 운명이라니까. 왜 아무도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세상에 반항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게 들어, 그냥 학교에 가지 말까, 하고 2초간 고민을 했지만, 씻어, 하는 오빠의 협박이 담겨진 목소리가 들려와서 깔끔히 그 반항에 대한 생각은 집어치우기로 하였다. 


학기 초에 전학을 왔는데, 어느 새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게 느껴졌다. 하긴 체육대회도 끝났으니 그럴 만도. 날씨가 완전히 여름 태세로 바꾸려는 조짐이 보였다. 안 그래도 나는 더위를 잘 타서, 평소에 내던 화에 거의 5배는 더 내는 것 같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이 나한테 정이 털리고, 금방 사라져(?) 주는 경우가 많은데, 왠지 이번 여름은 순순히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짝꿍아,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졌어? 혹시 내 생각 하느라,"


"닥쳐. 방금 체육 시간이었으니까."



변백현 얘는 내가 지금 체육복 입고 땀범벅인 모습을 봐도, 전혀 체육시간인지 짐작을 못하는 건가? 진심으로 박찬열 친구인 것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수행평가로 운동장 10바퀴 도는 게 있었는데, 나는 딱히 힘든 건 아니었지만 이 놈에 땀이 집중호우가 온 것 마냥 터져 나오고 있었다. 



"...oo야, 혹시 며칠 굶었어?"


"아니, 아, 오늘 체육 시간에 너무 뛰었어. 너도 좀 팍팍 먹어. 아, 네가 그렇게 안 먹어서 살이 안 찌는 건가..."


"응? 내가 안 먹는 게 아니라 네가 너무 많이 먹는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냐...?"



팩트를 폭행해. 팩팩팩트를 폭행해~ 경리의 말에 나는 전혀 반박을 할 수 없었으므로 그냥 닥치고 식판만 바라보았다. 웬일로 내 주위가 조용하냐고? 오늘 변백현네 반과 우리반이 축구 경기를 한다고 하길래 밥도 안 먹고 운동장에서 열심히들 뛰고 있다. 아까 점심시간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한 7천번 쯤은 들은 것 같다. 



"그럼 넌 너네 반 응원하겠네? 난 아무도 응원 안 해야겠다... 두 반 몽땅 한심해서..."


"아, 나는 우리반 말고 경수 응원할 거야."


"경수? 경수가 너희 반이잖아."


"아니, 우리반 말고 경수."



경리야, 왜 하나도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날 봐... 나는 우리반은 싫은데 경수는 좋다고! 서둘러서 밥을 다 먹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햇빛이 강하긴 하지만, 경수의 포커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쪽으로 가서 경수의 얼굴이 뚫리도록 바라보았다. 우리 경수는 뛰고 있어도 어쩜 저리 귀여울까? 



"누나, 축구 보고 있었어요?"


"응, 꺼져."



안 봐도 누군지 다 알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과격한 반응을 해버렸다. 내 반대쪽에 있던 경리는 내 반응이 어지간히 웃긴 모양인지, 축구를 보다 말고 크큭, 웃고 있었다. 민석 오빠의 동생이라서 잘해주려고 참 노력을 했건만, 이상하게 민석 오빠와 현아 언니와는 달리 정이 탈탈 잘 털리는 스타일이었다. 역시 연하랑 나는 좀 잘 안 맞는 듯.



"누나, 내일 뭐해요? 주말인데."


"음, 딱히 할 건 없지만 존나 바쁠 것 같아. 집에만 있어야 할 듯."


"아... 그래요? 우리 누나가 oo 누나 불러오라면서 그랬는데, 어쩔 수 없네요."




"우리 누나? 현아 언니?"



아, 씨발... ooo, 네가 그렇게 유혹에 약한 애였냐? 현아 언니로 넘어가지 말라고. 그리고 저 새끼가 구라치는 걸 수도 있잖아. 아니, 구라면 집 밖으로 나오면 되지? 아, 말이 그렇게 되는 건가? 


머릿 속으로 수많은 내적갈등을 하다가 결국 간다고 해버렸다. 그와 동시에 김종대도 옆에서 소리를 지르고, 변백현네 반이 골을 넣어버려서 귓청이 뜯기는 줄 알았다. 그리고 왜 하필 변백현 반일까? 경수가 넣어야 됐었는데... 그리고 나는 경수가 공격이 아니라 수비였다는 걸, 축구 경기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





"..."


"..."




"하하, 두 사람 왜 아까 전부터 말이 없어? oo야...?"



김종대가 거짓말을 친 건 아니였지만,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오빠도 불렀으면 불렀다고 말을 하던가! 토요일 아침부터 민석 오빠네 집으로 출동해서 과자를 먹으면서 티비 감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현아 언니가 온다는 소리에 현관문까지 쪼롬히 나가줬는데, 이게 뭐야! 왜 오빠 얼굴이 내 앞에 있냐고. 아까 아침 인사로, 오늘 절대로 보지 말자면서 얘기 했었는데... 내 계획은 다 망쳐졌다. 거기에다가 이 집에서 밥까지 같이 먹고 있는데,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언니, 나만 부른 건줄 알았는데 오빠까지 불렀네요."


"어? 아... 음, 그게 원래 너만 부를려고 했는데, 준면이가 하도 심심하다고... 그러길래... 혹시 화났어?"




"네, 좀 화났어요. 아침에 오빠한테 절대로 보지 말자면서 인사하고 왔거든요."


"야, 너는 너보다 누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내가 그렇게 가르치든?"


"응, 이렇게 가르쳤는데. 그리고 누나가 아니라 언니거든. 맨날 남동생 취급하고 있어, 못 생긴게."



오빠랑 이렇게 맨날 싸우는 게 안 귀찮냐고? 귀찮을리가. 이렇게 정성껏 시비를 털어주면 나도 정성껏 답해주는게 인지상정이지. 솔직히 앞에 현아 언니가 있어서 이정도지, 없었어 봐. 그냥 서로 물고 뜯고 (진짜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내가 왠만해서는 인간 취급을 해주고 싶지만, 오빠 만은 예외다. 꼴에 앞에 현아 언니 있다고 멋있는 척 하는 것 좀 봐. 으, 정 털려!



"언니, 저 먼저 가볼게요. 오빠 얼굴 계속 보고 싶지 않아서."


"어? 아... 그래? 너 블루베리 케이크 좋아한다길래 사왔는데, 이거라도 먹고 가!"


"아니요... 먼저 갈게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블루베리 케이크도 땡기지 않았다. 아까 밥을 하도 꾸역 꾸역 넣어서 그런가. 아, 젠장 뭔가 체 할 것 같은 예감이 벌써부터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현아 언니한테는 엄청 미안하지만, 이 거절은 절대 고의가 아니다. 빨리 나가야지, 싶어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내가 손잡이를 잡기도 전에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머리통들이 집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짝꿍아! 너 여기 있었어? 와, 역시 우린 운명이다..."


"야, 어디서 개수작이야. 손 안 놔?"


"야, 너도 똑같거든. 내 짝꿍 괴롭히지 마라? 넌 짝꿍도 아니면서."




"아, 더운데 빨리 좀 들어가지?"



어, 경수다. 맨 앞에 있던 박찬열이 갑자기 내 두 손을 붙잡더니 운명이라는 둥, 운명론을 들이대는데 옆에서 변백현은 또 개수작이냐며, 내 손을 다시 붙잡아 왔고, 내 손은 그렇게 붙잡히고 놔지고를 반복하다가 경수가 들어옴에 멈춰졌다. 여기서 또 나의 내적갈등이 시작되었다. 방금 전에 아주 당당한 발걸음으로 먼저 가본다고 했는데, 막상 경수 얼굴이 보이니깐 마음이 참 흔들렸다. 



"근데 짝꿍아, 너 어디 가려고?"


"아, 그냥 오빠 얼굴 보기 싫어서."


"그럼 나가?! 짝꿍 나가면 나도 나갈래!"



아니, 이 멍청한 새끼는 뭐지? 너무 당황스러워서 순간 대답도 나오지 않고, 행동도 멈춰졌다. 박찬열 이새끼는 정말 사람 당황하는데 뭐 있다. 혜리까지 소개 시켜줘가지고 애가 안 그래도 비정상인데, 더더욱 비정상처럼 되어버렸다. 아, 내가 그런 망할 짓을 하는 게 아니였는데. 



"oo야."


"어?"




"그냥 집에서 같이 놀자. 내가 준면이 형, 방에서 못 나오게 막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