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16 ( 세훈 & 경리 Ver.)

큥큥 뛰어다녀 2017. 8. 30. 17:23



홍일점













oo에게 몰카 아닌 몰카를 해주기로 해서 경리와 같은 날 수학여행을 간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같은 날에 간다고 해도 스케줄이 달라도 이렇게 다르다니, 경리와 만날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었다. 그저 숙소가 살짝 가까워서 뛰어가면 만날 수 있겠다는 것? 세훈은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했다. 제주도에서 경리와 마주치게 된다면, 정말로 사귈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 것이라고. 


수학여행을 가는 당일에는 그 전날 밤에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기분에 부풀어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만난 것 마냥, 이런 기분이 처음이여서 당황스럽기만 했다. 혜리와 oo에게는 절대로 이런 감정을 알리면 안 되겠지, 생각했다. 이건 죽을 때까지 두고두고 놀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이니까. 



"야, 세훈아. oo 기절했데, 멀미 너무 심해서. 우리 자유시간이잖아, 지금 oo네 숙소 가볼래?"


"어? 쓰러져?"



사랑스럽게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몇 시간 자유시간을 준다고 해서 경리와 제대로 연락을 해볼까, 했던 세훈은 oo가 쓰러졌다는 얘기를 혜리에게서 듣고 순간 손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놓쳐버렸다. 휴대폰을 챙길 겨를도 없이 oo가 걱정돼 혜리와 꽤 가깝게 있는 oo의 학교 숙소까지 재빨리 뛰어갔다. 



"oo야!!! 괜찮아?!"


"...엥, 이혜리? 오세훈?"


"너 기절했다면서! 죽을병 걸린 거야!? 갑자기 왜 기절해!"



하도 빨리 뛰어온 덕분에 금방 oo네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니, 쓰러졌다는게 구라는 아닌지 아무 것도 못 먹은 거지처럼 홀쭉해져 있는 oo가 보였다. 세훈과 혜리는 둘이서 oo의 한쪽 손을 붙잡고 걱정스러운 눈길을 마구 뿜어냈다. oo는 당연히 놀랍기도 놀랍고, 이 시선이 참으로 부담스러운지 그 눈길을 피하기만 했다. 



"너네 나한테만 비밀로 하고 수학여행 왔냐? 진짜 너무했다!"


"헤헷, 너 놀래켜줄려고. 근데 너 생전 안하는 멀미를 다 하고, 웬일이래?"


"몰라... 혹시 멀미도 옮는 거야?"


"멀미? 아, 멀미 심한 사람 옆에 있으면 옮는 거 아니야?"


"아, 그렇지!? 그래, 씨발, 내가 갑자기 멀미를 할 리가 없지. 이게 다 박찬열 때문이야!"



어느 새 oo와 혜리에게서 떨어져 말도 안되는 그녀들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니 세훈은 옆에 있는 동글소년한테 왠지 모르게 미안함이 들었다. 근데 저 동글소년 어디서 많이 봤는데, oo 친구인가? 경수 또한 세훈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뾰족남 어디서 많이 봤는데, 하고. 서로가 서로를 계속 바라보다가 갑자기 서로 생각들이 났는지, 아! 하고 서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 저번에 담배 피던 그 친구구나."


"어? 아, 나 담패 안 폈는데. 너 그래, 너 현아 누나랑 사귄 걔구나?"


"...나 걔 아닌데?"



물론 서로가 잘못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무렴, 대충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는게 어디인가. 혜리와 oo를 깔끔히 버려두고 현관 앞쪽에서 얘끼를 나누는데, 경수 또한 세훈이 경리에게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세훈은 경리를 소개 받던 그 날에, oo가 경수와 했던 통화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기에. 



"박경리한테 전화 해봐봐. 걔 오라고 하면 올 텐데."


"에이, 그래도 놀고 있을 텐데 방해되잖아. ...그리고 oo 보러 오는 것 때문에 뛰어와서 휴대폰도 버려두고 왔어."



경수도 어지간히 세훈의 행동에 놀랐는지, 의외라며 박수를 쳐주었다. 근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후 하고 한숨을 쉬던 세훈은 소녀처럼 쭈그려 앉아있는 자세를 좀 바꿔볼까, 하고 허리를 피려고 하는데 앞에 있는 현관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혹시나 이 학교 선생이라도 들어오면 정말 꿀잼이겠다, 싶어 답지 않게 쫄아있던 세훈이었지만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는 다름 아닌, 세훈이 보고 싶어했던 바로 경리였다. 



"oo야, 여기 있어?! 어? 세훈아, 너도 여기있네?"


"어?"



경리와 여기서 마주칠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기에 허리를 필려던 세훈의 행동은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그대로 경수와 눈이 마주쳤는데, 둘 다 당황스러워 하는게 눈에 딱 보였다. 경리 또한 oo의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서 빨리 숙소로 돌아왔는 모양이다. oo가 쓰러졌다는 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 일로 인해 경리를 마주쳤다는 게 세훈은 그녀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거기에다가 제주도에서 경리를 마주쳤기에, 사귈 수 있다는 희망도 확신할 수 있었다.


사실, 뭐 여자를 좋아한 적이 있어야지 고백을 하던가 말던가 하지. 세훈은 처음 느껴보는 이런 감정에, 확실하게 고백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조차 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눈은 경리를 확실하게 보고 있는게 맞긴 하지만, 이것 또한 자신이 없었다. 계속 이대로 하면 되는 건가 싶기도 했고. 



"너 표정이 왜 그래? 어디 불편해?"




"어?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야? 그럼 다행이고. 너희 학교는 한라산 안 올라가냐? 나 내일가는데... 가기 싫어."



무엇보다도 경리는, 자신과 세훈이 아무리 소개를 받은 사이라고 해도 너무 편하게 지내거나, 아니면 이성적으로 관심이 없어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훈의 머릿 속은 평소와 다르게 점점 더 복잡해져 왔고 입 밖으로는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이 곳에 혜리나 oo가 있었다면 어떻게 하면 되냐고 연애 상담이라도 해보겠지만, 이제는 그녀들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너희도 밤에 자유시간 있겠네?"




"자유시간? 있지, 너희 숙소랑 우리랑 되게 가깝잖아. 밤에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밤에 나올 수 있으면 나와주라."



처음이었다. 겉모습은 여자들이랑 꽤나 놀 것처럼 생긴 세훈이지만, 여사친이라고 해봤자 oo와 혜리가 전부였고, 여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도 초등학교 때 어쩔 수 없이 고백 받아 사귀어본 것이 전부였다. 뭐 쉽게 말하자면 세훈은 연애고자가 확실했다. 밤에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하던 찰나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경리의 말을 듣자마자 어디서 생긴 지도 모르는 용기가 생겼다. 





***






"고백?! 야... 너 잘할 수 있지? 우리 꼭 솔로 탈출하자, 세훈아. 이 누나가 입술로 힘을 줄ㄱ, 악! 야, 아파!"


"야, 나 진지하거든?"



왠지 혜리에게 괜히 말했다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뭔가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아 기분이 뿌듯해졌다. 물론 입술로 힘을 준다는 개같은 소리를 할 때는 어퍼컷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벌써부터 쿵쾅거리는 심장 때문에 힘조절도 하지 못하였다. 


기다리고 있다는 경리의 카톡을 보자마자, 선생님께는 잘 좀 말해달라고 혜리에게 말한 후, 재빨리 경리의 숙소로 망설임 없이 뛰어갔다. 뛰는 도중에도 어떻게 고백을 하면 좋지, 하고 수백번 정도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숙소까지 도착하는 내내 답이 나오지 않아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한번도 자신이 이렇게 진지해본 적도 없었고, 경리가 이 마음을 받아줄 지도 몰라서 더더욱 문제였다. 



"어, 야 너 안 추워? 너 이럴 줄 알았지. 밤 돼서 추운데 아무 것도 안 걸치고 왔네."


"어? 아... 나 괜찮은데."



하도 뛰어와서 날씨가 쌀쌀한 지도 모르고 있었다. 산 근처이기도 했고, 아직 완벽한 여름도 아니여서 밤이 되니깐 추울 정도로 쌀쌀했다. 하지만 세훈은 경리의 앞이기도 했고, 뛰어온 탓에 쌀쌀한 걸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경리는 이럴 줄 알았다면서, 세훈에게도 맞는 큰 사이즈의 후드집업을 직접 입혀주었다. 그와 동시에 세훈의 볼은 붉어졌고, 밖이 하도 어두워 경리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추운데 그래도 날씨는 좋다, 그치?"


"그러게..."


"할 말이 뭐야?"


"...아,"


"너 답지 않게 말을 계속 끄네? 뭐 중요한 말이야?"



뛰고 있을 때만 해도 용기가 있었는데, 막상 경리의 얼굴을 마주보고 하려고 하니 흘러 넘치던 용기가 도대체 어디로 증발했는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쌀쌀한 바람이 얼굴의 열을 식혀주며 용기를 내라고 응원을 해주는 것 같아, 세훈은 심호흡을 깊게 하더니, 입술을 뗐다. 



"...넌 나 어떻게 생각해?"


"어? 무슨 뜻이야?"


"난...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정말 좋았는데. 지금은 더 좋고. 사실 너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oo한테 너 소개시켜달라고 했었어. 넌 나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난 널 볼 때마다 두근 거리고... 그리고 이렇게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도 처음이라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더 모르겠어... 고백도 멋지게, 남자답게 하고 싶었는데, ...미안해."




"...멍청아, 충분히 멋진 고백이거든? 야, 그리고 생각을 해봐. 내가 너한테 관심이 아예 없었으면 너를 지금까지 만나고 있지도 않았겠지. 그리고 좀 전에도 밤에 너랑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했겠지. 나도 너 좋아하고 있었어, 세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