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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백현 빙의글] 비단향나무꽃 ː 영원한 아름다움 11

큥큥 뛰어다녀 2017. 10. 2. 18:26



비단향나무꽃 ː 영원한 아름다움













목소리가 정말 많이 갈라졌다. 말하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싶을 정도로 내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다시피 했다. 링거를 맞아서 그런지 이제 몸은 멀쩡해졌다. 목소리만 돌아오면 완벽하게 나은 건데, 안 돌아오면 어쩌지, 하고 쓸데없는 걱정도 하긴 했다. 이렇게 아픈데도 불구하고 변백현을 보면 내 몸이 깔끔하게 다 낫는 기분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아니, 이른 오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변백현의 전 여자친구, 손승완. 전에도 말했다시피 얘는 인기가 무지 많았다. 우리 학교에만 해도 썸 탄 애들과 사귄 애들만 합치면 솔직히 3학년 전체 남학생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의 클라스였다. 1학년 때는 학교 생활에 관심이 없어서 딱히 손승완이 남자를 갖고 놀던, 얼마나 사귀던 간에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손승완은 변백현의 전여친이니까. 



여러모로 충격이 참 많았다. 



난 변백현이 손승완과 헤어지고, 물론 말은 하더라도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일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당연히 상상하고 싶지 않았던 게 내 욕심일 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이 당연히 옳은 줄 알았다. 나는 전남친과 사이가 좋아지거나, 그런 상황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 그냥 차차 둘러보ㅈ,"


"어우, 야... 너 이렇게 말해도 돼? 목소리 정말 장난 아니다... 그냥 나 혼잣말 할 테니깐 넌 듣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 대학 박람회를 갔다온 다음에 거기서 햄버거 쿠폰 준다고 했잖아, 그걸 먹ㄱ,"



청소 시간에 슬기와 운동장으로 재빨리 달려 내려와 운동장을 돌며, 이번주 토요일에 있을 대학 박람회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까 계단에서 내려오면서 변백현을 보긴 했었는데, 얘가 운동장에 내려왔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당연히 4층에 있었으니까, 계속 거기에 있는 줄만 알았지. 나와 슬기의 시선은 운동장 구석 쯤에 앉아있는 변백현에게로 향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되게 좋았는데, 곧 우리 둘의 표정은 썩어들어갔다. 





"야, 쟤 손승완 아니야?"




"...그러게."


"와, 대단하다. 전남친들 옆에 끼고 뭐하는 거냐?"



물론 손승완과 변백현은 붙어있지 않았다. 변백현 전남친2 손승완 이렇게 세명이서 나란히 앉아서 무슨 얘기를 저렇게 즐겁게 하는지, 난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손승완은 얼굴에 무슨 철판을 깔았길래 저렇게 전남친들과 즐거운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나만 이해가 안 가는 건가 싶어 슬기를 바라봤는데, 슬기 또한 이해가 전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손승완이랑 친하지 않아서 그냥 약간의 실망만 하고 끝났지만, 슬기는 달랐다. 슬기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초반까지만 해도 손승완과 무척이나 친했다. 2학년 말에 갑자기 친해진 나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한 친구였다. 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손승완이 갑자기 슬기의 인사를 무시한다거나, 연락을 씹어버리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 사이가 이렇게 흐트러져버린 거라고 들었다. 



"이해가 안 된다..."



손승완에게도 물론 실망했지만, 변백현에게도 조금은 서운했다. 당연히 변백현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조차 모르고 있을 테지만. 내가 바라는 건 큰 게 아니다.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생각해주길 원하는 건데. 하긴 나와 관련도 없는 변백현이 내 생각을 해주는 것 자체가 이상한 바램이었다. 


너는 정말 날 여자로 취급을 안해주는 구나... 그래, 바랄 걸 바래야지. 애초에 나와 변백현 사이는 그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친구도 아니고, 뭣도 아닌 그런 관계. 나만 이렇게 계속 마음을 쓰고 있는 그런 슬픈 관계였다. 





***





"변백현 웬일로 오늘은 안 들어가네. 원래 점심 먹고, 매점에서 먹을 거 산 후에 바로 계단으로 올라가잖아. 오늘은 밖에 되게 오래 있는다."


"아이고, 완전 사생팬 납셨다. 변백현 생활을 완전 꿰뚫고 있네. 근데 너, 어제 일은... 괜찮아?"



어제 일? ...괜찮지 않았다. 짝사랑이 힘든 줄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힘들 줄은 몰랐다. 상대방이 내 생각을 해주지 않는, 이런 상황은 슬프기만 했다. 변백현은 앞을 계속 보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앞을 바라보고 있는 변백현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 어제 그런 일을 저지른 변백현이 참 괘씸했다. 


정말 내 마음도 모르고, 변백현은 너무 예쁘게 웃으면서 친구들과 잘 놀고 있었다. 그렇게 좋아? 너, 정말 너무 했어... 



"에이, 너무하다!!"


"맞아, 너무해!!"



슬기랑 계속 변백현 쪽을 보면서 너무한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그 소리가 변백현에게 닿았을 지는 모르겠지만. 닿았으면 좋겠다. 나 혼자만 이렇게 슬픈 생각을 하고, 슬픈 상황을 갖는게 너무 억울했다. 나도 변백현처럼 활짝 웃고 싶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 속마음을 다 표현해버릴까 하는 미친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럴 용기는 나지 않았다. 앞에 서서 눈만 마주쳐도 세상이 멈춰버린 듯이 떨리는데, 변백현에게 말 한마디 하는게 나는 너무 떨렸다. 





***





"그래,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었어! 근데 엄청 덥다..."


"오늘 날씨 흐리다고 안 그랬어? 해 완전 쨍쨍한데..."


"나중에 밤 되면 흐려질걸, 그나저나 쟤네 덥겠다. 운동장에 햇빛 완전 직빵인데?"



사실 어제 변백현이 밖에 너무 오래 있길래 슬기와 축구하는 거 아니냐며 엉뚱한 추리를 했는데, 그게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었나 보다. 귀여운 변백현과 참 어울리는 핫핑크 축구화를 신고 운동장에서 열심히 축구를 하고 있는 변백현을 보니 내가 다 뿌듯해졌다. 근데 축구를 하기에는 날이 너무 더워보였다. 물론 6월 말이면 더운 날씨도 맞긴 하지만,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다. 



"힘들어 보여..."


"야, 마실 거 사다줄래? 나도 1반에 친한 애들한테 사주고, 너도 변백현한테 주고."




"...엥? 내가?! ...할 수 있을까?"


"야, 당연히 할 수 있지. 말 나온 김에 얼른 매점가자."


"나 돈도 없는데!?"


"야, 친구는 뭐하러 둬. 내가 빌려줄 테니까 넌 잔말 말고 변배현한테 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변백현한테? 내가? 물론 슬기의 말을 듣고나니 하고 싶어지긴 했다. 변백현도 축구를 하고 나서 많이 힘들테니까, 시원한 걸 사다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놈의 용기가 왜 이렇게 안 나는지. 매점에 있는 자판기에서 파워에이드를 뽑아 최대한 식지 않게 윗부분을 잡아 콩닥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니, 1시 10분... 곧 예비종이 칠 시간이었다. 이렇게 심장이 뛰다가 수명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고 걱정까지 들었다. 



"야야, 끝났는데, 애들 너무 많은데...? 너 괜찮아?"


"아..."



안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 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축구하는 애들도 많고, 구경하는 애들도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특히나 변백현 주위에는 애들이 더 많았다. 도대체 어떻게 줘야 할 지를 몰라, 변백현이 이 쪽으로 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긴 고민을 했다. 할 수 있어, ooo. 뭘 고민하는 거야, 그냥 친구로서 걱정돼서 음료수 쯤 사주는 건데, 뭐가 문제야? 그래, 가자.



"저..."


"?"



변백현이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려고 하기에, 이때가 아니면 절대 못 줄 것 같아서 변백현의 등을 손가락으로 살살 누르고서 최대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떤 애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지 나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면 난 어차피 눈 앞에 있는 변백현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변백현도 내가 말을 걸어서 꽤 당황한 모양이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구나.



"이거..."




"이거, ...왜?"


"아, 그냥, 마시라고..."



너무오랜 만에 대화를 나눠서 살짝, 이 아니라 엄청 많이 떨렸었다. 이거 왜, 하고 묻는 변백현의 표정이 처음에는 그다지 좋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도 괜히 움츠려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낮은 웃음을 지으며 그냥 마시라고 파워에이드를 변백현에게 조금 더 가까이 내밀었다. 




"...고마워."



내 낮은 웃음을 보았는지, 변백현 또한 고마워, 라 말하며 나보다는 조금 더 밝은 미소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 거 아닌 평범한 대화이고, 너무 짧은 대화라고 느껴지겠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긴 대화였고, 평범하지 않은 아주 소중한 대화였다. 백현아, 내가 더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