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Daily Love (中)

[변백현 빙의글] Daily Love 04

큥큥 뛰어다녀 2019. 2. 13. 11:50

Daily Love







04. 혹시


감정에 휘둘리는







야자 때 그 일이 있는 이후로 변백현과 사적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야자 감독이 오기 전에 사이를 풀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나 때문도 아니고... 도대체 왜 내가 고민하고 내가 풀 생각을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정작 변백현 본인은 아무 생각도 없어보이고, 충독적으로 한 행동이 분명할 텐데... 갑자기 과거 회상이라도 한 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oo 쌤도 커피 드려요?"




"아, 아니요. 괜찮아요."



커피의 쓴 맛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터라 종인 쌤에게 괜찮다 거절을 하고 멍하게 있다가도,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교과서를 꺼내 어디까지 했었더라, 하고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고 있는데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교무실 밖에서 들리더니 교무실의 문이 아주 조금 열려 자연스레 그 쪽으로 시선이 갔다. 다행히도 나만 시선이 갔나보다. 교무실 문 앞에서 쌤! 하고 입모양으로 나를 부르는 찬열이가 보인다. 또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이건 뭐야?"


"백현 쌤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난 쌤 편이라서 말해주는 거예요."


"백현 쌤? 백현 쌤이 주라고 시키신 거야?"




"네네-. 쌤은 좋으시겠어요. 학교에서 연애도 하고-."



연애?! 이 놈이. 서둘러 찬열이의 입을 막고 절대 비밀이라고 공포감을 심어준 뒤, 찬열이가 손에 쥐어준 복숭아 스무디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칫- 하는 허탈한 웃음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얘는 어쩜 어릴 때랑 똑같네. 내가 복숭아 좋아하는 건 여전히 잘 알고 있는 변백현이었다. 





***





"곧 2학년들은 수학여행을 가는데, 올해는 3-4군데 정도 장소를 학생들한테 보여주고 반에서 가장 많이 나온 곳으로 각자 반끼리 가려고 합니다."



다음 달? 아, 그러고보니 곧 있으면 4월이었다. 4월이면 수학여행을 가는 구나. 나도 수학여행을 갔을 때가 떠올라 괜스레 웃음이 나는데, 회의 도중에 변백현과 눈이 마주쳐 바로 웃음을 없애버렸다. 변백현은 회의 내용은 귓등으로 듣는 건지, 왜? 하고 세상에 우리 둘 밖에 없다는 느낌으로 다정하게 물어오는데 난 당연히 무시를 했다. 사이가 나아졌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예전만큼 좋아진 건 절대 아니었다.



"얘들아, 수학여행 가는 건 다들 알고 있지? 이번에는 반끼리 간다고 하더라고. 부모님이랑 상의해서 가고 싶은 곳 체크해서 내일까지 가져오면 돼."


"네-."



종례 시간이 끝나고 교무실로 돌아가려는데, 쌤! 하고 나를 부르는 찬열이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저는 제주도 체크했어요 라며 손가락으로 브이 제스쳐를 취한다. 제주도? 그러고보니 나도 수학여행 때 제주도를 다녀왔었네. 



"쌤은 어디 체크했어요?"


"쌤은 체크 안하는데? 너희가 결정한 곳으로 가지. 근데 쌤도 수학여행 제주도 갔다왔었어."


"에이-. 그러면 다른 곳 할 걸 그랬나? 근데 다른 애들도 다 제주도 할 텐데."


"왜? 또 가면 안돼?"


"되는데, 쌤이 혹시 지루하면 어떡해요. 갔다온 데면 와봐서 재미없을 수도 있고."




"에이, 그래도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나는 어딜 가든 괜찮은데?"



어린 개구쟁이로만 봤는데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조금은 기특한 것 같다. 교무실로 돌아왔는데, 종례가 끝나고 청소 시간이 되니 밖은 물론 교무실 안에도 시끌벅적 했다. 교무실 청소 당번인 예림이가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는 모습을 보자, 문득 중학교 때의 내 모습이 떠올라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





"변백현! 너 방해하지말고 집에나 가시지?"




"야, 그래도 나 때문에 너 벌청소 하는 거잖아. 이 오빠가 특별히 같이 있어줄게."


"아니, 야! 그러면 도와주기라도 하던가, 왜 방해를 하고 있어?"




"방해 하는 게 아니고 너 따라다니는 거지, 바보야."



분명히 아침에는 준비를 빨리해서 절대 지각은 안 하겠지, 하고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는데 변백현이 아침을 굶었다며 편의점에 같이 가자고 하는 바람에 나는 당연하게 알겠다며 따라갔는데, 빵을 먹을지 삼각김밥을 먹을지 30분 동안 고민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는 지각을 해서 담임 쌤께서 교무실 청소를 혼자 하라고 하셔서 이렇게 벌청소 중이었고, 변백현네 담임 쌤은 변백현이 지각한 것도 모르고 계셔서 내 벌청소를 구경만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지각했다고 꼰지르고 싶었지만, 변백현이 나한테도 츄러스를 사줘서 그대로 입막음용이 되어버렸다.


근데 왜 자꾸 청소하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방해를 하는지 쌤들이 다 퇴근하셔서 다행이지. 계셨으면 분명 더 혼나서 다른 곳을 청소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결국 10분이면 될 청소를 30분 동안이나 해버렸다. 변백현, 이자식!



"기다려줘서 고맙지? 뽀뽀."


"눈물나게 고맙다!"



조용한 학교에서 빠져나와 하교를 하는데, 변백현이 고맙지? 라며 뻔뻔하게 말을 해오길래 그냥 뽀뽀를 해주지 말까 고민을 했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변백현이 내 뒷머리를 감싸안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행동 덕에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야, 왜 볼에 해줘?"


"네 주댕이 더러워서!"





***





나는 등산을 매우 싫어한다. 지금의 나도 그렇고, 고2 때의 나도 그렇다. 그렇다고 내리막길도 그닥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2학년 부장 쌤이 얼마나 등산을 좋아하셨던지... 한라산 등반을 2학년 전체가 다 해야 한다면서 우리를 억지로 한라산까지 끌고 가셨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 '안 갈 거면 아예 안 가고 갈 거면 백록담까지 찍고오자!' 가 나의 마인드였다. 부장 쌤은 정말로 아픈 아이들이 처방전을 들고와야지만 등산을 하지 않도록 해주셨다. 당연히 전자는 안 될 것 같아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 변백현... 너무 힘들다. 우리 좀만 쉬다가자."




"야, 여기선 아무도 안 쉬는데?"



처음 나온 휴게소에서는 아무도 안 쉬더라...? 너무 힘들어 쉬고 싶어서 나는 옆에 있는 변백현의 옷깃을 잡고 제발 쉬었다 가자면서 정자의 마룻바닥에 앉아 숨을 돌렸다. 백록담까지의 내 여정이 참 걱정이 되었다.



"...나 그냥 여기까지만 갈까?"


"밥 조금만 먹어. 많이 먹고 가면 올라갈 때 토할 수도 있데."


"...야, 나 진짜 가?"


"갈 거면 끝까지 간다면서."



진달래밭 대피소까지 오고 나니 목에서 피 맛이 제대로 나 그냥 점심만 먹고 내려갈까 잠시 고민을 했는데, 옆에서 묵묵히 밥을 먹던 변백현은 밥을 조금만 먹으라며 백록담까지 올라갈 의지를 마구마구 보여주었다. 


사실 내 한라산 등반에 가장 도움이 되어준 사람은 변백현이다. 사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변백현이랑 어색해진 것도 있고, 그 키스 사건으로 인해 별로 붙어있고 싶지 않았지만 먼 곳으로 오니 나에게 가장 의지가 된 애는 역시 변백현이었다. 얘도 멀리 떨어져 있다가 내가 다시 옆에 붙어있으면 날 이상하게 볼 만도 한데 그러지 않고 진심으로 날 위해줬었다.


진달래밭 대피소부터 백록담까지는 길이 아주 험했다. 그냥 내 다리만한 바위들을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고 정말 정상이 다와갔을 때는 경사가 얼마나 가파르던지, 그냥 밑에까지 데굴데굴 굴러가고 싶었다.



"...흐엉! 엄마 보고 싶어..."



백록담에 올라오자마자 너무 별게 없길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운 게 가장 크다. 얼마나 슬프던지,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정말 서글프게 울었다. 울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구석에 쭈그려 앉아 혼자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리길래 옆을 보니 어느새 변백현도 나와 같이 쭈그려 앉아 경치가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봐."


"뽀뽀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쭈그려 앉아있는 상태에서 길진 않지만 짧지도 않게 입을 맞춘 변백현이었다. 뽀뽀도 아니고, 키스도 아닌 어중간한 입맞춤에 나는 눈이 동그랗게 떠지다가도 변백현을 따라 눈을 감았다. 쭈그려 앉아 있어서 다행이지, 둘다 서있었으면 뽀뽀하는게 바로 들키고 말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 입맞춤이 고등학교 시절 변백현과의 마지막 입맞춤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