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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조각글] 그때의 우리 1

큥큥 뛰어다녀 2019. 4. 22. 04:18

그때의 우리

 

 

 

 

 

 

 

 

 

 

 

 

원래 그날로 돌아가고 싶다는 후회 같은 건 해본 적 없었는데, 요즘따라 그런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물론 지금도. 만약에 내가 그때 한 번만 더 이럴 상황을 생각했더라면 지금과 달리 행복했을까. 우리가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였을까.

 

 

"백현아, 너 조별과제 누구랑 됐어? 나 너랑 하고 싶었는데..."

 

"아, 나는,"

 

 

눈 마주쳤다.

 

그러기에 너는 나와 달리 무척이나 잘 지내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었다. 무슨 고집에 같은 수업을 듣겠다고 수강신청 때 같은 과목으로 신청해버려 가지고... 그때의 행동이 지금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당연히 몰랐다. 우리가 헤어지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때 당시에는. 정말로, 나만 후회하고 있었다. 헤어진 것을.

 

 

"너 쪽지 봤어?"

 

"아, 아니. 까먹고 있었네. 넌 누구랑 됐,"

 

"어? 왜 말을 하다 말아?"

 

 

왜지. 혹시나 조금 전에 눈 마주쳤던 게 이것 때문인가. 교수님 정작 나를 F의 벼락 끝으로 보내려고 하시네... 쪽지에 정자로 적힌 '변백현' 의 이름을 보고 하던 말을 멈춰버렸다. 옆에 있던 수지는 나를 따라 발걸음을 멈추더니 내 쪽지를 흘긋-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와 똑같이 정적을 유지하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

 

 

"...미쳤네. 너 어쩔 거야..."

 

"...나 어떡해... 수지야."

 

 

아예 모르는 사람이랑 파트너 시켜주지 그랬어요, 교수님... 그게 차라리 이것보다 훨씬 나을 것 같은데... 내가 먼저 변백현한테 연락을 해야 하나, 아니면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둘 중 한 명은 무조건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심지어 이건 교양도 아니고 전공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 다음에 바로 교양 연강이 있는 수지를 보내고 혼자 건물을 나가기 위해 계단을 걷고 있는데 입구에 있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좀 전과 달리 옆에 붙어있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얘기 좀 하자. 우리 같은 조잖아."

 

 

다행히 변백현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근데, 왜 속에서 뭐가 끓어오르는 기분이 드는 걸까. 1분 1초도 좋아하는 티를 내지 못해서 안달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데, 변백현은 바쁜 모양인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자꾸만 확인했다. 그 행동 덕에 안 그래도 복잡한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자료 조사는 같이하자. 그리고 발표는 내가 할 게. 너 발표하는 거 안 좋아하잖아."

 

"...아, 고마워."

 

"나 지금 볼일 있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할 게."

 

 

기억해주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앞에 나가서 발표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발표하기 며칠 전부터 긴장을 하곤 하는데, 사귈 때부터 그런 나의 단점을 알고 있었던 변백현이었다. 근데 난 왜 또 이런 사소한 배려에 기대를 하게 되는 걸까. 한심하다, 역시. 분명 변백현은 생각없이 뱉은 말일텐데. 

 

 

 

 

***

 

 

 

 

사귈 때는 조금, 은 아니고 많이 힘들었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울었던 적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건 다 내가 바라는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변백현에게 티를 낼 수 없었다. 서운함을 티낼 수 없었다. 그런 내가 귀찮아질까봐. 질릴까봐. 이유는 많았다. 그렇게 내 속마음을 감춘 건 꽤 오래됐었다.

 

 

-"나 이제 들어가."

 

"...아, 취하진 않았어? 괜찮아?"

 

-"응, 집 들어가서 다시 연락할 게."

 

 

새벽 4시 반이었다. 솔직히 12시부터 너무 잠이 왔지만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상하게 자기 싫었다. 내가 자버리면 뭘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술자리에 가기 전에 일찍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지만, 내 부탁은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하지만 왜 늦게 들어가냐고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싫어할까봐, 표현할 수 없었다. 

 

솔직히 전화도 끊고 싶지 않았다. 술 마시고 집 들어가는 게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나랑은 만나주지 않고 친구들이랑 술자리를 갖는 게 부러워져 조금 질투가 나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 어제 과제 못 내고 자버렸네. 짜증나."

 

"...아, 어떡해. 교수님께 내가 한 번 여쭤볼까?"

 

"그럼 고맙고. 나 내일 애들이랑 술 마시러 가."

 

 

나도 속상하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이래서 속상했다, 이렇게 말하면 그랬어? 하고 위로 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변백현의 감정이 우선 같아보여 내 속마음은 또 감추어버렸다. 위로를 해주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나는 변백현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다.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