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2/Daily Love (中)

[변백현 빙의글] Daily Love 05

큥큥 뛰어다녀 2019. 12. 21. 10:10

Daily Love

 

 

 

 

 

 

05. 원래

 

 

원래라는게 있었어? 우리 사이에. 

 

 

 

 

 

 

수학여행이 딱히 나의 여행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학생들을 챙겨주는 선생님에 불구했으니까. 교사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내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였다. 한숨을 푹- 쉬고, 눈을 감고 비행기 탑승 시간 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뭔가 소리가 들리길래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oo 쌤 하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에 곧 눈이 떠졌다.

 

 

"피곤해요?"

 

"네, 피곤하네요. 그러니까 말은 별로 안 하고 싶은데."

 

 

"나랑 얘기 좀 해요."

 

"무슨 얘기요? 전 백현 쌤이랑 할 얘기 더 이상 없는데."

 

 

혹시나 누가 우리 대화를 듣기라도 할까봐 나는 조심조심, 아주 조용히 말을 꺼내고 있는데 변백현은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인지 대화를 끊으려고 하는 내가 답답한 모양인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저 행동은 답답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하는 변백현의 버릇과도 같았다. 순간 예전 생각이 나던 나는 변백현을 바라보던 눈을 딴 곳으로 뒀다.

 

 

"응? 얘기 할 거에요?"

 

"하세요."

 

 

"그럼 나 좀 봐야지."

 

 

가끔씩 훅훅 들어오는 반말에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누가 들으면 진짜 어쩌려고... 이런 말들을 들어보면 단순하게 친구라고 생각을 못 하잖아. 나도 괜스레 답답해진 마음이 생겨 억지로 변백현을 보려 하는데, 갑자기 쌤 비행기 타래요 하는 종대와 찬열이의 목소리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나중에 얘기 할 때는 꼭 나 봐줘요."

 

 

대답도 하지 못했다. 내가 언제부터 변백현한테 꿀려서 이렇게 하고 싶은 말도 마음대로 못 내뱉는 지경이 되어버렸지? 하긴, 변백현 입장에서는 꽤 답답했을 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 입맞춤을 먼저 시작한 사람은 나였고, 습관처럼 하던 입맞춤을 하지 말자고 한 사람도 나였고, 갑자기 아는 척도 하지 말자고 한 사람도 나였다. 

 

 

 

 

***

 

 

 

 

"쌤, 솔직히 말해봐요. 백현 쌤이랑 사귀죠?"

 

 

"무슨 소리야... 사귀긴, 그냥 친구 사이야."

 

"뒤에서 백현 쌤이 쌤만 쳐다보시던데요?"

 

 

첫 날 일정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꼭 내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플랜을 보는 것 같아,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제주도에 오자마자 바로 성산일출봉을 올라간다니, 말도 안 되는 일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마음 같아서는 입구에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반 애들이 하도 같이 가자고 졸라대는 바람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있었다. 안 그래도 힘들어죽겠는데, 변백현은 왜 뒤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건지... 

 

 

"oo 쌤, 물 좀 드세요. 아, 이거는 백현 쌤한테 좀 전해주실래요?"

 

"아, 네에. 감사합니다."

 

 

종인 쌤이 내미는 물을 건네받고, 변백현이 어디있나 살피고 있는데 나와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곳에서 학생들과 같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저럴 때 보면 고등학교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어린 애 같은데. 물을 전해줘야 할 것 같아 변백현이 있는 쪽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백현 쌤, 물 드세요."

 

"고마워요."

 

"쌤, 저희가 사진 찍어드릴게요!"

 

"그래? 예쁘게 찍어봐."

 

 

엥? 갑자기 상황이 왜 이렇게 됐지? 나는 그냥 변백현한테 물을 전해주러 왔을 뿐인데, 어느새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변백현 때문에 나는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어리버리하게 뭐 해요, 하는 찬열이의 목소리 덕에 정신을 차렸다. 죽어도 사진은 찍기 싫었지만, 얼른 포즈를 취하라는 애들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변백현과 사진을 찍었다. 

 

하필 카메라도 폴라로이드일게 뭐야. 어느새 애들에게 필름을 받아서 살살 흔들고 있는 변백현 모습을 보고서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그래, 뭐 소꿉친구랑 사진 쯤이야 찍을 수 있지, 하고 생각을 하려고 해도 마음이 착잡했다. 

 

 

"나 oo 쌤한테 좋아한다고 말한 거, 그거 진심이였어요. 지금도 진심이고."

 

"...지금 와서 그 말을 하는 의도가 뭐에요?"

 

"그때는 쌤이 내 말을 안 들어줬잖아요. 나는 계속 이 말 해주고 싶었는데."

 

 

성산일출봉에서 내려가는 길에, 드디어 변백현과 말을 섞을 수 있었다. 표정은 일상 얘기를 하는 것 처럼 보이기 위해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바닥 만을 바라보는 내 시선에, 좀 전에 변백현이 했던 말이 떠올라 그를 보려고 고개를 조금 들었는데, 살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슬픈 표정을 품고 있는 변백현과 마주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나 oo 쌤 많이 좋아하고 있었어요."

 

 

 

 

***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다. oo와 입을 맞추건, 스킨쉽을 하건 그냥 친한 소꿉친구일 뿐인데 당연히 별 생각이 없었다.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중학생이었을 적부터 입맞춤이 조금은 다르게 나에게 다가왔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평소와 다르지 않게 같이 집에 걸어가다가 oo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일상처럼 입을 맞추고 뒤로 돌려고 하는데,

 

 

"잘 가!"

 

 

하고 인사하는 네 모습을 보고 원래 심장이 이렇게 빨리 뛰는 건가, 하고 의문이 들었다. 그제서야 너와 있을 때마다 기분 좋음을 느끼고, 너와 입을 맞출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뜀을 체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소꿉친구로 지낸 너에게, 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였다. 갑작스럽게 널 좋아한다고 이렇게 말해버리면 이런 친구 사이로도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 어린 나에게는 이것 만한 고민이 더 이상은 없을 정도였다. 

 

 

"넌 친구랑 키스하냐?"

 

"..."

 

"아니면 너 나 좋아해?"

 

 

하지만 우리의 친구 사이는 그닥 오래가지 못했다. 점점 너를 향한 내 마음이 커져가고 있을 때, 평소와 똑같은 입맞춤이 아닌 조금은 깊은 입맞춤으로 내 마음을 전했을 때 너는 당연히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했다. 내가 많이 갑작스러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도 충분히 생각했다.

 

 

"좋아해."

 

 

당연히 넌 갑작스러운 고백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에겐 전혀 갑작스럽지 않았다. 그래도 너한테 많이 미안했다. 너에게 예고를 해주지도 않았고, 티를 내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내 마음을 너에게 고백할 수 있을 상황은 없을 것 같아, 지금에 와서 너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너는,

 

 

"야, ...너 나 진심으로 친구로 생각하기는 해? 넌 항상 네 생각만 하더라. 내 생각은 죽어도 안 해주고!"

 

 

울고 있었다. 내 진심을 전했는데, 너는 울고 있으니 마음이 복잡해져왔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던 건가 싶어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울고 있는 너에게 다가가서 달래주고 싶었지만, 지금 그 행동이 네가 원하는 것일까 싶어 쉽사리 위로해주지도 못했다. 

 

 

"...왜 울어."

 

 

네 눈물을 계속해서 보고 있자니 나까지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아, 너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이걸로 눈물을 그칠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부드럽게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이기적인 고백으로 인해, 힘들어 하는 너를 보니 너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 하고 처음으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