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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FATAL (完)

[변백현 빙의글] FATAL 10



FATAL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더러운 기분은 처음이었다. 처음 와 보는 공간 속에 빠져나오지 못 하고, 시간을 헛되게 쓰고 있었을까. 어디선가 밝은 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 조그마한 빛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빛은 점점 커져갔고. oo는 그 빛에 감싸지더니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하…"




그대로 눈을 때는 환한 낮이었다. 근처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익숙한 향만 맴돌 뿐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이 곳에 백현의 집이라는 걸 알아 챈 oo는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왜 이런 곳에 자신이 있는 건지. 


그리고 도대체 며칠이나 의식이 없는 채로 있었는 건지, 몸이 이렇게 굳어버릴 수가 없었다. 허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머릿 속에서 누가 뭐라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어라 설명을 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아, 씨발… 이게 뭐야…"




일어나자마자 거친 육두 문자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머릿 속에 강한 아픔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고, 물론 몸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달려와 이 아픔을 어떻게서든지 해결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지도 모른 채, 죽은 사람처럼 의식이 없던 백현의 눈은 떠졌다. 눈을 떠보니, 손 발은 다 묶여져 있었고. 처음 보는 공간 속에 갇혀있었다. 분명 이 짓은 세훈이 했을 거라는 생각에 백현은 눈썹을 찌푸린 채,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




구석 쪽으로 시선을 두었을 때는 백현의 눈이 크게 띄어졌다. 분명 자신의 집에 누워있어야 할 oo가 지금 눈 앞에 있다는 것이, 백현은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표정도 잔뜩 굳어져 있는 게, 평소의 oo의 모습 같아 보이지 않았다. 물론 평소에 oo와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살기가 느껴지는 분위기 또한 아니었다. 




"…야, 너. 괜찮은."


"입 닥쳐. 죽겠으니까…"




다행히, 세훈의 생각대로 oo가 자신의 인재로 된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곳까지 어떻게 오게 된 것인지, 그것이 의문이었다. 백현은 oo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통에 휩싸여있는 oo를 보니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야, 뭐 하나만 묻자."




oo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가만히 있던 백현은, oo의 힘겨운 말이 들려오기에 곧바로, 어? 하고 대답을 해왔다. oo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고통이 섞인 소리도 함께 들려왔고. 백현의 마음 또한 편하지 못 하였다. 




"오세훈 그 새끼가… 나한테 무슨 짓 했는 지, 알고 있냐?"




oo가 자신의 몸이 평소 같지 않다는 걸 깨우친 모양이었다. 백현은 좀 전에 세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게 확실하지도 않은데, 바로 oo에게 말하려니 여간 고민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oo가 아파하는 모습을 계속 볼 수만은 없어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무거운 입을 열어 말을 이었다. 




"너만한 인재가 없다고 하더라."


"…씨발, 그 새끼는 도대체 내 몸에 무슨 짓을 한 거… 악!"




세훈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긴 말을 내뱉고 있는 도중에, oo는 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손으로 머리를 붙잡더니 바닥에 털썩- 하고 쓰러져버렸다. 깜짝 놀란 백현은 당장 oo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꽉 묻긴 손 발 덕에 그 쪽으로 갈 수가 없었다. 







백현이 있던 창고의 문이 열리더니, 말끔한 옷으로 바꿔입은 세훈이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백현은 그저 말 없이 세훈을 노려볼 뿐이었고. 세훈은 비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먼저 말을 꺼내었다. 




"그런 무서운 표정 짓지 마. 일단 oo는 내가 데려갈 게. 너희 둘 인사 시켜주고 싶어서 넣어놨거든."


"네 목적이 뭔데?"


"목적? 글쎄, 딱히 없는데."




수확 없는 세훈의 말에 백현은 됐다는 식으로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말도 통하지 않는 세훈과 더이상 말을 섞어봤자, 득 될 건 없다고 느꼈기에. 그러다가도 자신의 조여있던 손 발이 점점 풀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은 백현은 다시 눈을 떠,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너를 이렇게 묶어봤자 나한테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oo도 이제 내 편이고."


"…"




세훈에게 뭐라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기에 백현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세훈은 그저 백현의 반응이 재밌다고 지켜볼 뿐이었고. 백현은 세훈의 품에 안겨있는 oo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다. 세훈은 백현과 oo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더니, 다시 싱긋- 하고 웃음을 띄우고는 창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얼마 있지 않아, 좀 전에 만났던 비서가 벽을 통해 들어오더니 백현에게 다시금 꾸벅- 하고 인사를 해왔다. 백현은 비서에게 시선을 두다가도,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 




"세훈 님께서 백현 님를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된 거 반박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그냥 세훈의 말을 따르기로 한 백현이었다. 얌전히 비서를 따라 STAGE1 이라고 적힌 새로운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새로운 방은 아니었다. 백현에게는 유독 익숙한 공간이었으니. 


여비서는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라는 말을 남기고는 또 다시 벽을 통해 사라지고 말았다. 백현은 비서는 생각치도 않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볼 뿐이었다. 방 안이 아닌 공간을. 







***







공간 속에는 어린 백현과 지금보다는 젊어보이는 사령관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린 백현은 흙 바닥에 엎드린 채, RT-20의 총구 손잡이에 손을 대 조준을 하고 있었다. 곧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어마어마하게 겹겹이 쌓여있던 벽들이 부서지고 말았다. 




"좋아. 이 정도 실력이라면 너도 상사가 될 자격이 충분하겠구나."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할아범!"




지금과 별 반 다를 것 없는 미소를 지은 채로 어린 백현은 자신의 비밀 장소인 비공식 훈련장 안을 뛰어다녔다. 사령관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훈련장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탕 탕- 하는 총 소리가 울려퍼지더니 백현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하였다. 시간이 꽤나 늦어 이 시간에는 훈련을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 하는 생각으로 백현은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안 돼."




총 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제 3구역 상사, oo였다. 어린 나이, 성별을 가뿐히 무시한 채 한 구역의 상사라는 역할까지 따낸 oo의 소문은 백현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잠시 지켜보니,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며 사용하기 어려운 총기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백현에게는 역시나 멋있어 보였다. 




"뭐야?"




아무리 어려도, 한 구역의 상사라 그런 지. 얼마 있지 않아 인기척을 느낀 oo였다. 뭐야, 하는 oo의 앙칼진 목소리에 백현은 잔뜩 겁을 먹은 채로 그대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oo는 백현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총기를 바닥에 던져두고는 백현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변백현?"




당연히 자신의 존재 따위는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백현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생각 외로 자신의 얼굴 뿐만 아니라, 이름까지 알고 있던 oo 덕에 백현은 눈과 입이 똑같이 크게 벌어지고 말았다. oo는 그런 백현의 반응이 웃겼는 건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oo의 훈련하는 모습은 많이 지켜봤었지만, 이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여서 백현은 여지간히 신기할 수가 없었다. 




"날 알아?"


"알지. 사령관 님께 주워듣기도 했고, 너 훈련하는 것도 한 번 봤어. 좀 하던데?"




어린 마음이지만, oo를 동경하고 있던 백현에게 oo의 말은 아주 큰 희망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이 훈련하는 모습까지 봤다니. 백현은 입가에서 웃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난 너 못 따라가. 넌 벌써 상사까지 갔잖아."


"왜 못 따라가? 상사가 나 한 명 뿐인 것도 아니고. 그렇게 제한적인 직위도 아니잖아. 나 이렇게 지켜볼 시간에 훈련이나 더 열심히 해."




oo는 백현에게 좀 전에 자신이 썼던 총을 던져주더니 훈련이나 더 열심히 하라는 말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생각 외로 너무나도 무거운 총에 백현은 눈을 크게 뜨고는 저 작은 몸으로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들었지? 라는 생각이 가득 들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백현이 있던 장소는 그냥 검은 색으로 가득 찬 평범한 방일 뿐이었다. 환영인가 싶은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저절로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곧 총의 장전 소리가 뒷 쪽에서 들려오더니 백현의 시선은 저절로 뒤를 향하였다. 




"…와."




백현의 입 밖으로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좀 전에 환영으로 봤던 어린 oo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는 oo의 모습 때문에. 그리고 자신에게 총기를 들이밀고 있는 모습 또한 차이가 없었다. 




"덤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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