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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 조각글] 서울행



서울행














나는 지방에 사는 흔한 고딩이야. 고3이라서 많이 놀지도 못하고, 그러고 있는데 뭔 상담 받을게 생겨서 서울에 올라가게 됐어. 거기에다가 개학 전 마지막 주말이라서 더 신나게 놀고 와야지, 싶었어. 누구랑 갔냐고? 혼자 갔지. 나는 마이웨이를 무척 잘하기 때문에. 


7시 반 쯤에 엄마 목소리로 눈을 떴어. 일어나자 마자 양치를 하고, 렌즈도 끼고, 머리도 감고, 본격적으로 화장을 하려는데 엄마가 국밥 좀 먹고 가래. 당연히 돼지인 나는 국밥의 유혹을 거절 못했지.



"상담하는 쌤 번호랑 이름 좀 알려주고."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들 보다는 좀 쿨하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 뿐인 딸이 다른 지역에 갔다오는 건 아무래도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어. 그래서 문자로 상담해주시는 쌤 성함이랑 연락처를 엄마한테 보내놨지. 


이건 딴 얘기인데, 아침에 티비에서 진짜 재미없는 것 밖에 안하더라. 그러다가 우연히 '제시카 앤 크리스탈' 재방 하는게 재밌어서 넋놓고 보다가 시간이 다 돼가서 깜짝 놀라가지고 서둘러서 준비했지. 서울은 추울까봐 히트텍도 두꺼운 걸로 입고 핫팩도 가져갔어. 엄마가 회사 먼저 출근하고, 그 다음에 내가 얼마 안 있어서 집 밖으로 나왔지.



"아씨... 젠장."



우리 집은 동대구역이랑 좀 가까운데, 그래도 걸어가기에는 좀 거리가 있거든? 근데 가는 버스들이 다 10분 넘게 남아있는 거야. 근데 이제 기차 타는게 거의 20분 밖에 안 남아있어서 쿨하게 택시를 타고 동대구역까지 오니, 역시 기본요금!


나쁘진 않네, 싶어서 동대구역 안으로 들어와서 전광판을 봤어. 내가 25분 차였거든. 근데 23분, 29분 차들만 있지, 25분이 없는 거야. 이상하다 싶어서 물어봤거든, 근데 깜짝 놀란게 서울에서 동대구 가는 버스인 거야... 얼마나 당황했던지, 그래도 침착하게 얼른 승차표 반환하고 제일 빠른 29분 열차를 끊으려고 보니까 매진인 거야... 또 당황해서 한번 더 누르니까 18호차에 자리가 딱 하나 있는 거야!



"헐!"



재빨리 티켓팅 하는 것처럼 비상시 엄카를 꺼내서 결제를 하고 난 무사히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지. 근데 그 전에 내가 서울에 사는 남자 애랑 연락을 하고 있었거든? 절대 썸 같은 거 아니고, 심지어 별로 친하지도 않아. 솔직히 장거리인데 썸을 어떻게 타냐... 그치? 아무튼 걔가 상담 끝나면 말하라고 했거든. 근데 상담이 말이 상담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다? 같은 거거든. 그래서 일단 알겠다고 했지.


(서울 지리를 모른다면 pass) 1시간 반 가량 기차를 타고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어. 서울역에서 1호선을 타고 가산디지털산지 역에 내려야 하는데, 내가 눈이 비꾸인지 신창행이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그냥 인천행을 타고 구로에서 내려서 갈아타려고 했거든. 그래서 구로에서 신창행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계단 내려오는 도중에 지하철이 와있는 거야. 뛰어가기 귀찮아서 그냥 다음거 타자면서 천천히 내려가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는 거야. 진지하게 나 40분 기다리다가 지하철 탔다... 


한 정거장 더 가서 가산디지털산지에서 내려서 쌤께 전화하고, 처음 만난 사이지만 우린 점심 시간이라서 같이 돼지국밥을 먹었어. 쌤 엄청 마르시고 예쁘신데 식성이 대단하시더라. 난 배불러 죽겠는데 쌤은 배고프다고 하셨으니까.



"와, 벌써 3시간 반이나 지났네요?"



원래 이 컨설팅을 할 때 비용이 들거든. 근데 나는 지인 부탁으로 무료로 할 수 있었어! 아무튼 상담한 건 개인적 얘기니까 넘어가고, 다른 얘기도 하다보니까 4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어. 보통 2시간이면 끝난다는데, 나는 좀 오래했지. 


그렇게 컨설팅 끝날 쯤에 안 보고있던 휴대폰을 봤는데 친구가 연락이 와있는 거야. 친구 이름을 경수라고 할게. 왜냐면 걔 디오 닮았다는 얘기 되게 많이 듣는데, 내가 보기엔 영 아니야. 경수가 연락이 와서 그냥 이제 끝나간다고 그러니까 이제 한참 동안 답이 없는 거야. 서울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지리를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얘가 답이 없으니까 마냥 짜증났지. 거기에다가 내가 번호 저장을 잘 안해서 얘 번호도 없었어. 



"하... 인생."



짜증났는데 그래도 닦달하기는 싫어서 대구에 사는 친구한테 전화를 하면서 7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삼성역에 내려서 아티움에 갔어. 눈정화를 하고 있는데 역시 주말이라서 사람들이 많더라. 기념품(?)도 사고 싶었는데, 이제 좀 현실적인데에 눈을 떠서 그냥 안 샀어.


휴대폰 보니까 아직도 연락 없더라. 어디가지, 생각하다가 경수 집이랑 가까운 잠실역까지 왔어. 근데 잠실 오니까 롯데 나라인 줄 알았어. 다 롯데 밖에 없더라. 근데 내 꿈이라고 하면 좀 소박하지만, 내가 놀이공원을 좀 좋아해서 롯데월드를 꼭 가고 싶었어. 에버랜드는 가봤으니까 됐고.



"와, 여기가 천국이구만."



진지하게 할 것도 없는데 혼자 롯데월드를 갈까, 생각해는데 난 괜찮지만 사람들이 나 불쌍하게 볼까봐 그냥 말았어. 시간도 좀 저녁 시간이고, 주말이니까 사람들도 많았거든. 결국 롯데백화점도 돌아다니고, 혼자 베스킨라빈스도 먹고, 그러다가 너무 피곤해서 그냥 앞에 있는 아무 의자에 뻗었어.


나는 내가 잘 놀 줄 알아가지고, 밤 11시에 기차를 끊어놨거든. 생각 해보니까 잠실이랑 서울역 거리도 좀 있고, 얼른 집에 가고 싶어서 그냥 반환하고 강변역 가서 버스타고 집에 가자, 라 생각하고 강변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어. 다행인지 휴대폰으로 보니까 8시 차가 있었어. 그때가 7시 살짝 넘어있었거든.



"어?"



근데 버스를 끊으려고 하니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길래 나는 택밴 줄 알았어. 택배 올 게 있었거든. 그래서 그냥 전화를 받았는데, 경수인 거야! 경수 목소리 듣자마자 온갖 사투리 섞인 욕을 써대면서 얼마나 소리를 질렀던지.



-"하, 야 진짜 미안. 내가 좀 미쳐가지고 잠 들었었어."


"어, 좀이 아니라 많이."


-"미안, 너 어디야."


"이제 대구 가려고."


-"미친 소리? 딱 기다려. 서울역?"


"아니, 강변역. 오려고?"



당연하지, 라면서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서 기다리래. 알겠다, 하고 난 또 근처에 있는 베스킨라빈스를 갔지^^ 내가 아이스크림을 좀 좋아하거든. 한 15분 기다렸나,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애가 엄청 빨리 온 거야. 뭔가 했더니만, 얘가 돈 귀한 줄 모르고 택시를 타고 왔네! 안 그래도 차 막힐 텐데 말이야. 근데 좀 감동이긴 했어. 서운한 거 다 잊어먹음. 



"oo야, 진짜 미안... 너 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


"그래? 나 롯데월드 갖고 싶은데, 사줄래?"


"아, 그건 좀. 근데 너 그거 보면 운다면서, 안 울었냐?"



아, 이건 무슨 소리냐면 내가 롯데월드 엄청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얘한테 어젯 밤에 나 롯데월드 보면 울지도 모른다고, 그랬었거든. 사실 진지하게 눈물 찔끔 나긴 했었어. 근데 이거 말하긴 좀 그래서, 설마 울었겠냐, 하면서 구라를 쳤지. 



그나저나, 역시 인간은 외로움을 타는 동물인 가봐. 경수를 만나고 나니까 시간이 얼마나 잘 가던지. 생각 해보니까 기차는 11시고, 도착하면 12시 반이 넘어. 앞이 참 막막했지. 거기에다가 눈 앞에 롯데월드가 있는 데도 못 가고 말이야.



"내가 수능 끝나면 롯데월드 쏠게."


"진지? 녹음해."


"아, 오빠 못 믿냐?"


"오빠? 야, 너 00이잖아. 누나라고 불러."



얘가 빠른 00이거든. 그래서 학년은 나랑 같은데, 나는 맨날 빠른을 용납할 수 없어서 누나라고 부르게 해. 근데 오늘 은근슬쩍 반말 했네? 빠른 주제에 기어오르고 있어! 아무튼 엔젤리너스에서 딸기 뭐시기 사주길래 먹고 있으니까, 글쎄 9시가 넘었네?!



"야, 누나 어디가?"


"야, 새끼야. 누나라고 불러."


"누나라고 부르고 있잖아. oo야, 어디가냐니까?"



이새끼가 날 들었다놨다 하네? 이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이슬톡톡 딱 하나만 마시려고 하다가 참이슬을 결국 반이나 마셨어. 알쓰인 나에게는 반병도 크나 큰 데미지야. 분명히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oo야는 웬 말?


강변역은 잠실이랑 가까워서 잠실 한강공원까지 왔어. 겨울이라서 춥긴 추운데 술이 들어가니까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경수랑 오늘 컨설팅 한 거 술김에 얘기하고, 고쓰리라서 힘드네, 하면서 별 얘기를 하니까 시간이 금방 갔어. 



"oo야, 너 가야 돼."


"아, 안 갈래... 서울 좋아, 서울 내꺼."


"그럼 나도 네꺼겠네?"


"헛소리 그만하시구여."


"나 서울 살잖아. 서울 네꺼면, 나도 네꺼네."



끝. 한강에서 변사체로 다음 날 뉴스에 나올 뻔 했지만, 경수가 책임있게 서울역까지 택시타서 태워다주고, 기차 안까지 나를 쳐넣어줬어. 자서 부산까지 가면 롯데월드는 없는 일이다, 하는 협박 때문에 나는 거의 한숨도 못자고 대구까지 무사히 도착했어. 



이 글은 진짜 거짓말 1도 안 보탠 글쓴이의 실화임. 그 이후로 연인이 된다거나 그딴 일은 없음. 왜냐면 4일, 그러니까 오늘, 은 아니네, 12시가 넘었기 때문에. 서울 다녀오자마자 쓰는 글이기 때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