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2/비단향나무꽃ː영원한 아름다움 (中)

[변백현 빙의글] 비단향나무꽃 ː 영원한 아름다움 06



비단향나무꽃 ː 영원한 아름다움


부제、그 시절 내가 좋아한 남학생













일요일 내내 기대를 버리도록 하자며 스스로에게 주문이라도 걸 듯, 기대하지마! 기대하지마! 만 백 만번 쯤 되새긴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월요일이 밝으니 변백현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사라지기는 커녕, 자기 전에 주문했던 문장들이 다 스르르 녹아버린 기분이었다. 버스를 놓쳐버려가지고, 물론 다음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졸업 사진 날이여서 일찍 학교에 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택시를 타고 학교에 가버렸다. 



"아, 하복 터지면 어떡해?"


"야, 그정도는 아니네-. 잘 어울린다, 야."



하복보다는 생활복이 편해서 여름에는 항상 생활복을 입고 다녔다. 그래서 하복은 터지든 말든 내 알바가 아니였는데, 이렇게 하복을 입게 될 날이 올 줄이야. 반에 도착하자 마자 하복을 입어봤는데, 역시나 쫑기는 맛이 있긴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몸에 힘을 주고 다니니, 보기 역겨운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은 총 3장의 사진을 찍는다. 수능 때 증명 사진, 졸업 앨범에 실릴 동복·하복 사진, 이렇게 3장이다. 다 같은 순서로 찍을 수가 없어서, 선생님들이 순서를 알려주셨는데 여학생들은 하복 사진을 먼저 찍는다고 하더라. 근데 우리 반은 그 여학생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 반이여서, 꽤나 대기 시간이 길 것을 예상하였다. 보니까 1반은 동복 사진을 먼저 찍는다고 하던데, 동복 사진은 어디서 찍는 거지...



"아, 안 보이네... 사람 진짜 많다."



3학년 전체가 돌아다니는 탓에 사람이 참 많아보였다. 아, 이과 남학생들은 많이 보이는데 문과 남학생들은 왜 이렇게 안 보이는 거지? ...인사하고 싶은데. 사진을 찍는 지구과학실, 시청각실, 물리실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1반은 커녕, 문과 남학생들도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찾는데 지쳐버려서 그냥 옆에 있는 아무 의자에 앉아서 거울을 봤다. 


옷도 갈아입고, 애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있어서 땀냄새가 얼마나 나던지. 거기에다가 우리 학교에는 남학생들 수가 훨씬 더 많아서 냄새가 참으로 더 심했다. 정말로 엄살이 아니고, 나는 냄새에 비위가 약해서 토도 많이 했는데 오늘도 역시나 역겨운 냄새가 너무 많이 나서 대기 시간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변백현 생각이 점점 더 나고 있었다. 아, 원래 힘들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나고 그러잖아...? 아닌가. 



"자, 10반 하복 사진 촬영 준비하세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드디어 우리반의 첫 촬영 시간이 오는 건가 싶어서 나는 이제 어지러운 것도 조금은 떨쳐보내고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구과학실 앞에 줄을 서서 어떻게 찍지 하고, 계속 슬기랑 고민을 하는데 그냥 꽃받침이 가장 무난하고 평범할 것 같아서 계속 그 포즈만 무한반복하며 최대한 사진 찍는 상상을 많이 하고, 표정도 계속 지어보았다. 



"아... 힘들어."


"야, ooo! 지금 몇 번 찍고 있냐?"


"어? 아, 10번대?"



아니, 무슨 포즈 하나 지었다고 이렇게 피곤하다니. 내 촬영이 다 끝나고 지구과학실에서 나오니,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지도 모른 태형이가, 지금 몇 번 찍고 있냐며 물어왔다. 순간 당황해서 내가 몇 번인지도 까먹어 버렸네. 어?!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쟤 1반이잖아. 그럼 변백현도 이 근처에 있다는 거 아니야?



"야, 태형아. 너네 지금 뭐 찍고 있어?"




"어, 우리 동복 촬영 끝나고 지금 수능 사진 기다리는데, 수능 사진 진짜 개 오래 걸려. 머리 다 까고 그런 시간이 있어가지고."



아, 하긴 수능 사진은 조건이 까다롭다는 건 미리 들었다. 그래서 앞머리도 다 까고, 눈썹 보이는 상태에서 귀도 보여야 된다고 그러던데. 자기네 반들은 다 시청각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길래 옆에서 쉬고 있는 슬기를 끌고서 시청각실로 들어가려는데, 슬기가 시청각실에 있는 작은 방송 준비실에 들어가자며 또 권력 남용(?)을 하기 시작했다. 아, 물론 난 좋지만.


아, 왜 좋냐고? 시청각실에 카메라가 몇 대 달려있는데 그 카메라를 조종하면서 변백현이 어디있나,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암만 조종기(?)로 카메라를 돌려가며 시청각실 전체를 둘러봐도 변백현은 보이지 않았다. 아, 도대체 어디있는 거야... 그냥 포기할까, 했는데 앞쪽을 둘러보다가 드디어 변백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워서 동복은 안 입고 있는 건지, 녹색 반팔 하나만 입고 있는 변백현이 참 귀여워 보였다. 



"아, 주위에 사람 겁나 많네."



어디 있는 지도 알고, 이제 인사만 하러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주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 곳에서 인사를 하면 나는 온동네 망신을 다 받을 것 같아서 그냥 깔끔히 포기하고 카메라로만 많이 감상하였다. 그러다가 속이 계속 안 좋은 것 같아, 좀 넓은 시청각실로 그냥 가기로 해서 아무 빈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큰 숨을 쉬고 내뱉었다. 아, 진짜 토할 것 같다...



"1반, 1반 다 모여서 수능 사진 준비해라. 귀 다 보이게."



선생님 말씀이 내 귀에 들리자마자 나는 재빨리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앞자리에 앉길 잘했네. 시청각실 앞 쪽에서 수능 사진 찍는 모습을 다 볼 수 있었다. 최대한 그 쪽에 시선을 안 주는 척하며, 힐끔 힐끔 잘 볼 수 있었다. 언제 교복을 입었는지, 이제 말끔히 동복을 입고 있는 변백현의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 참 멋있다니까. 



"야, 10반! 동복 촬영 해야 된데, 빨리 물리실로!"



어, 씨발?! 욕이 절로 떠올랐다. 변백현 수능 사진 찍는 것도 못 봤는데, 물리실로 가야 한다니. 정말 끔찍했다. 옆에서 실장이 계속 빨리 오라며 내 팔을 잡고 끌고 가기에, 나는 서운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실장의 손에 이끌려 물리실 앞에서 줄을 섰다. 대기 시간 내내 피곤했는지, 얼굴 꼴이 점점 말이 아니게 되더라. 


아, 다 찍었다... 이제 수능 사진만이 남았다. 둘러보니, 1반은 수능 사진도 다 찍었고, 이제 하복 촬영만 하면 끝나는 모양이었다. 변백현도 이제 동복을 벗고, 하복을 입고 있었다. 아씨, 수능 사진 찍는 것도 못 보고... 짜증나. 심지어 타이밍도 딱히 생기지 않아, 인사도 못하고, 주변을 맴돌거나 눈 마주치는 일만 일어났다. 





***





점심 시간 때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속이 하도 안 좋아서 그런가, 그래서 급식으로 나온 구슬 아이스크림만 제대로 먹고 바로 교실로 올라왔다. 5교시가 물리여서 물리책을 들고, 같이 물리 수업을 듣는 친구에게 빨리 나오라며 이름을 부르고 있는데, 녹색 물체가 보였다! 혹시나 하고 시선을 둬 자세히 보니, 꺅! 변백현이다! 심부름이라도 받았는 지, 8반 9반에 들어가서 종이 하나를 주고 나오더라. 




"아... 안녕!"


"안녕."



아, 웃으면서 인사 받아줄 줄 알았는데, 웃어주지는 않았다. ooo, 왜 기대하냐? 못 웃을 수도 있지... 인사를 해서 좋긴 하지만, 살짝 서운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을까. 저, 하는 변백현의 목소리가 들려서, 어? 하고 고개를 들어올리니,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거리에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멈칫- 해버렸다. 




"이거 영어 서술형 평가 답진데, 반 애들한테 말해주라."


"아, 알겠어. 고마워!"



말 한번 걸어줬다고 그새 서운한 게 풀려버렸다. 나도 참 단순하지. 변백현이 내려가는 걸 보고, 나도 친구들이랑 같이 4층으로 내려와 물리 수업을 들었다. 물리 수업을 듣는 내내 싱글벙글 미소를 유지하며 말이다. 인사를 한번 했다고, 어지러운 것도 싹 갈아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널 이렇게나 좋아하는 구나. 





***





"아나, 지구과학 완전 어렵네."



나는 야자 때 머리가 방해돼서 맨날 세안 밴드를 끼고 야자를 하는데, 9시에 1차 야자가 끝나자마자 세안 밴드를 낀 채로 친구랑 같이 4층으로 내려와 교무실로 걸어가는데, 씨발...? 아니, 왜 변백현이... 나는 멀리서 변백현을 보자마자 끼고 있는 세안 밴드를 목까지 내려버렸다. 시간이 없어서 빼지는 못했는데, 젠장... 망했다.



"...안녕?"


"...어? 아, 안녕..."



아나, 변백현이 먼저 인사를 해줬다. 씨발, 존나 좋은데... 창피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왜 이걸 끼고 내려와가지고! 변백현이 진짜 미친 애가 틀림 없다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지구과학 선생님 설명을 듣는데 설명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아, ooo 이 바보 멍청아! 목에 걸린 세안 밴드를 던져서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