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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18

홍일점













"서강준? 아, 음, 그 존나 잘생긴 새끼? 기억난다."




"아까 학교 앞에서 봤다니까... 짜증나."


"오세훈 이자식, 너 때문에 돼지가 고생했잖아."



어느새 오빠도 나와 세훈이 사이에 끼여서 서강준의 뒷담화 토론에 열띠게 참여하고 있었다. 물론 세훈이 때문에 예전 학교에 찾아가서 만난 이유도 있었지만, 딱히 세훈이에게 뒤집어 씌우고 싶진 않았다. 쿨하게 기다리지 못한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으니. 그리고 차단했는데 무슨 수로 연락을 하겠어? 내가 졸졸 따라다녔지, 생각해보면 그 선배는 나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뭐, 거의 이름 정도? 그리고 김준면의 동생이라는 것 정도?


생각해보면 짜증나는 일이 많다. 얼굴이 반반하게 생겨서 그런가. 지가 잘생긴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그랬지. 지 잘생긴 걸 아는 놈은 절대로 만나면 안 된다고 말이야. 사실 맞는 말 같다. 엄마 말이 틀린 적이 없지.



"너 그때 운 적도 있잖아. 강준 선배가 네 마음 몰라준다고."


"아... 미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인데, 죽고 싶어?"





***





이때는 지금과 달리 담배의 참 맛을 알게 된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고 싶은 욕구 때문에 쉬는 시간 마다 거의 나가서 한대씩 피곤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음, 이때는 좀 끊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 내가 담배를 피러 나올 때마다 항상 서강준도 먼저 나와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우리 학교 양아치라면 누구나 피는 장소 쯤은 알고 있지. 선생들한테 거의 안 들키는 사각지대를.



"다음 세계 지리라서 빨리 올라가야된다, 너."


"으응, 불 좀."



라이터를 안 들고 와서 요즘 담배를 잘 피지 않는 혜리에게 불 좀 달라며 담배를 내밀었는데, 혜리는 눈만 꿈뻑꿈뻑 뜬 채로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엥, 지금 뭐하자는 거지? 빨리 올라가야된다면서 반응이 이렇게 느려서 쓰나. 나도 혜리를 따라서 가만히 혜리를 쳐다보기만 했는데, 얘가 끝까지 반응이 구리네? 얘 설마.



"나 담배 안 핀지 오래됐어."


"엥? 야, 그래도 불은 필수 아니냐."




"필수라면서 넌 왜 안 들고 있는 거지?"



할 말 없게 만드네, 이자식. 차라리 담배를 안 피는 세훈이를 데리고 오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그냥 얘한테 시켜서 라이터 좀 빌려오게 만들면 되는데, 은근히 낯을 가리는 혜리한테는 그런 걸 시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가 저 사람들한테 가서 불 좀 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후, 짧은 시간 동안 머리에 현타가 강하게 왔다. 쭈그려 앉아서 불도 못 붙인 담배를 손가락으로 쥐고 있었다. 그리고 잘 안 보이게 가시같이 눈을 떠서 멀리서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의 자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휴, 지금은 포기해야 하나.



"야야,"



담배피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옆에 일어서있던 혜리가 내 어깨를 손으로 톡톡 치며, 나를 불렀다. 뭐지, 하고 멍 때리던 걸 멈췄는데 내 앞에 누군가가 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사람이 서강준인 걸 알고 심장이 펑- 하고 터지는 줄 알았다. 이때도 물론 서강준에게 관심이 넘치던 시절이었으니까. 당연히 아는 사이이긴 했지만 차마 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였다.




"불 필요해?"




"아, 네에..."


"대 봐."



아찔한 경험이었다. 서강준이 피고 있던 담배를 내가 물고 있는 담배에 갖다대더니 불을 붙여줬다. 진짜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오줌을 질질 안 쌌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 정도 외모의 사람이 그런 섹시한 늑대 같은 짓을 하는데, 질질 싸고도 남았지.


시간이 딱히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담배를 피고 들어간 건 아니지만, 덕분에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되어서 잘 듣지 않던 세계지리 시간에 더욱 더 멍을 잘 때릴 수 있었다. 서강준의 행동이 내 머릿 속에서 무한반복되던 시절이었지.





***





"야, 그거 아니잖아. 존나 좋았던 경험만 얘기하고 있네."


"근데 난 이거 처음 듣는데, 너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피고 다녔냐?"


"아, 오빠가 말할 처지는 아니지? 내가 소문을 들어보니까 오빠도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아아, 사실 위에서 말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이게 아니다. 그냥 떠올리기 싫은 기억보다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게 그나마 낫지 않을까, 해서 떠올린 건데... 저 두 인간이! 확 죽여버릴까? 아, 내가 지겠지... 그새에 오빠가 또 나한테 잔소리를 하려고 하길래 나도 재빨리 없는 얘기를 지어냈다. 오빠의 소문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뭐 찔리는 게 있으니까 내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 아닌가? 헤헷-.




"아무튼 그새끼 연락 와도 받지 말고."


"어차피 차단했어. 뭐, 올 것 같지도 않구만. 나한테 시간 투자할 인간이냐, 그 놈이."



하긴 내 말이 맞긴 했다. 어장을 얼마나 잘 두던지, 여자 꼬시는 데는 아주 탁월한 능력을 가진 놈이었다. 뭐 그만큼 얼굴 버프를 받아서 그런 거겠지만. 그 이후로는 남자는 얼굴이 다가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





"내가 너무 너 시간 뺏는 건 아닐려나 모르겠네... 바쁘지 않아?"


"에이 바쁘기는요-. 저 아무 것도 안해요, 언니."



오늘도 그지같은 보충을 어떻게 재끼지, 하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현아 언니가 맛있는 케이크 카페를 발견했다면서 주말에 같이 가지 않을래, 하고 권유하시길래 재빨리 지금 시간 어떠냐며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다. 박찬열이랑 변백현이 가면 오빠한테 다 일러버리겠다고 감히 나에게 협박을 하긴 했지만 하나도 안 무서워서 무시하고 학교 밖으로 뛰쳐나왔다. 내가 오늘 갑자기 만나자고 한 건데, 현아 언니는 자기가 다 계산하겠다면서 뿜빠이 하겠다고 하는 나를 말렸다. 진짜 천사야... 엉엉-.


다행이게도 서강준한테 연락이 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역시 그 놈은 나한테 관심을 꺼주는 게 날 도와주는 일이야. 예전에는 뭐가 그리 멋져보였는지, 휴, 지금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후회되는 일이다. 음, 잘 생각해보면 전학온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언니, 우리 오빠 어떻게 만나게 된 거예요? 나 예전부터 엄청 궁금했는데."


"아, 민석이 때문에 만나게 됐어. 준면이가 민석이 보러 우리집에 왔었거든. 근데 그때 나도 어쩌다보니 끼어서 같이 놀게 됐거든."




"아, 그때 오빠가 언니한테 반했구만. 맞죠?"


"아, 아니-. 내가 먼저 마음에 들어서 민석이한테 연결해달라면서 졸라댔었어. 나 깔끔하게 생긴 남자 좋아하는데, 준면이가 딱 내 이상형이였거든."



와, 충격이다. 김준면이 이상형이라니. 말도 안 돼... 아, 하긴 오빠가 초중고 때부터 인기가 많은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뭐, 이상하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오빠가 현아 언니처럼 예쁜 여자를 데리고 와서 여자친구다, 하고 소개를 시켜준 적이 없어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오빠의 연애사에는 내가 아예 신경을 안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아, 물론 내 연애사도 마찬가지로... 나는 18년 살면서 연애사 자체에 관심이 없었는 모양이다...


현아 언니한테 의외의 얘기를 들어서 그런가, 집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이제 거의 다와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 형체... 어디서 많이 봤다 싶어서 집중해서 보고 있었을까. 미친, 경수 아니야?!



"쟤는 누구야."



경수 옆에 분명 여자가 있었다. 처음 보는 여자. 확실하다, 여자. ...그래, 여자 교복을 입고 있으니까 여자겠지? 저 교복은 홍점고 교복이다. 차라리 스엠고였다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인상을 찌푸리고 여자 쪽을 한참 바라봤지만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차라리 변백현이나 박찬열한테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을까. ...차마 경수한테 직접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경수한테는 뻔뻔하게 대할 수 없으니까. (?)




"야야, 너 신호 놓쳤어."



경수랑 옆에 여자를 계속 빤히 본다고 초록불이 됐어도 못 건너서 뒤늦게 건널까 해서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는데, 누가 내 가방을 뒤에서 잡아오는 바람에 앞으로 걸어가지 못했다. 어, 오세훈 이자식 잘됐다! 나는 얼른 경수와 여자 애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쟤 누구야? 하고 물었다. 다짜고짜 물어봐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세훈이는 눈치있게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아까의 내 모습처럼 눈을 약간 찌푸리더니 내 손가락 쪽을 바라봤다.



"누군데, 쟤가? 너랑 교복 똑같네. 네가 알아야지."


"...내가 몰라서 묻지, 병신아! 알면 왜 묻겠냐?"


"하긴, 김사나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 너무 멀리있잖아."


"김사나? 걔는 누구야."


"있어, 존나 예쁘다고 인기 많은 애."



그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었구나. 전학오자마자 박찬열 아니면 변백현이랑만 붙어있어서 그런지, 누가 예쁘고 잘생긴 앤지 아예 모르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관심이 생기려고 하네. 우리 경수가 예쁜 여자한테 관심이 있었을 줄이야... 얼굴이 다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하는데...
























***



미친... 너무 오랜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