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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19

홍일점














"경수야, 그, 사실 나 너 좋아해... 나랑 사귈래?"


"...아, 나 사귀는 그런 거에 관심 없거든.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미안해."



아, 일이 제대로 꼬였다. 일주일 전인가, 학교에서 교무실 가던 길에 여자애 한명을 도와줬는데, 그 이후로 계속 나를 따라다녀대서... 떼어내고 싶었는데 뭔가 심한 말을 할 수도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고백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차라리 잘된 것 같아서 기회를 잡고 거절을 했는데 미안한 마음은 진심이었다. ...고백을 많이 받아봤어야지, 내가.





***





"도경수 옆에? 여자가?"


"야야, 조용히 해. 너 이거 아무 말도 하면 안돼. 특히 경수한테!"



결국 물어봤다, 박찬열한테. 물론 세훈이가 '김사나' 인 것 같다면서 이름까지 말해줬지만 김사나가 누군지, 몇 살인지, 몇 반인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으므로 날 도와주는 도우미(?)가 필요했다. 그래서 깊숙한 곳으로 데리고와 개미코딱지만한 목소리로 얘기하는데 박찬열 얘는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진짜로 멍청한 건가, 내 말을 왜 이렇게 이해를 못하는 거야! 휴... 괜히 말한 건가 싶었다.



"도경수가 여자랑 같이 있을 리가 없는데. 걔 여자 별로 안 좋아해."




"...여자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그러면 혹시... 남자 좋아해, 경수?"


"아, 짝꿍아. 너무 앞서나갔어. 그건 또 아니고, 그냥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 거야. 그래서 여자랑 사귀는 것도 본 적 없는데. 모쏠인가."



모쏠? 하, 미친... 귀염둥이 경수가 모쏠일 줄이야... 첫여자를 뺏길 수는 없다(?) 물론 내가 경수와 사귀겠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여자에게 순순히 넘겨줄 수도 없다.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볼까, 해서 너 김사나 알아? 하고 물었는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박찬열이다. 뭐야, 김사나라는 애 유명한 건가? 학교를 같이 안 다니는 세훈이까지 알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는데 말이야.



"걔 박경리랑 같은 반 앤데, 박경리랑 어느 정도 친한 걸로 알아."


"헐... 근데 난 왜 경리 반 갔을 때 한번도 못봤지? 처음 보는 얼굴이였는데..."


"짝꿍 네가 관심없는 사람한테는 눈길도 안 주잖아."



오호, 정답! 어느새 나를 너무 잘 알아버린 박찬열 덕에 아주 약간 소름이 돋았다. 이제 반까지 알아냈고... 경리랑 친하다고 하면 약간 물어볼 만한 것 같은데, 근데 자신이 없다. 차라리 경수한테 직접 물어볼까... 하필 그 자리를 목격해서...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내 성격이 너무 싫어졌다.




"내가 그럼 도경수 한테 물어볼까. 어제 둘이 있는 거 봤다고."


"오? 미친, 혹시 경수가 말하기 꺼려하면 어떡하지..."


"짝꿍아, 너 언제부터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썼다고 그래. 나랑 같이 가서 물어보자."



미친, 이렇게 경수한테 직접 물어보게 되는 건가? 사실 나도 싫은 건 아니여서 박찬열 손길을 뿌리치진 않았지만 막상 경수 앞에 도착하니... 아, 물론 내가 물어보는 건 아니여서 괜찮긴 하지만... 아니다, 전혀 괜찮지 않아... 왜 경수는 오늘도 귀여워가지고. 근데 경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뭔가 평소보다는 덜 둥글둥글(?)해 보인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혹시 김사나에 관한 고민인가? 아, 물어보고 싶다!




"야, 도경수. 너 어제 여자랑 같이 있는 거 다 봤다. 순순히 고백해. 아니면 이 형아가 그 여자 애한테 찾아간다."



아, 저새끼가... 감히 우리 경수한테 협박조로 말하다니, 용서 못해. 근데 경수는 아무 일도 아닌 건지 당황을 하지도 않고 그냥 아예 표정 변화가 없었다. 경수는 박찬열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이상하게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나는 눈을 못 마주치게 됐다. 아, 사실 찔리는 건 있지... 미안해, 경수야.




"oo야, 기분 나쁘지 않게 고백 거절하는 법 없을까..."


"어? ...그걸 왜 나한테..."


"넌 예쁘니까 고백 많이 받아봤을 것 같아서. ...아, 사실 박찬열 네가 본 거 맞아. 며칠 전에,"





***





담임이 부르셔서 교무실 가던 길이었거든. 근데 앞에 있는 여자 애가 짐을 잔뜩 들고 있는 거야. 딱히 도와줄 마음은 없었는데, 걷는게 뭔가 아슬아슬해 보여서 그냥 나도 모르게 가서 같이 들어주겠다면서 말했지. 같이 걷던 길에 자연스럽게 인사도 하고, 소개도 해서 누군지는 알게 됐는데 난 진짜 아무 관심도 없었거든. 무거워보여서 도와준 게 다니까.



"저 경수야, 같이 들어줘서 진짜 고마워!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어."


"아, 아니야. 나 교무실에 가봐야돼서 이만 가볼게."


"응, 나중에 또 보자!"



마지막에 한 인사를 듣고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진짜로 나중에도 보이더라고. 그때 너희랑 석식 먹고 반으로 올라가던 길이었는데, 너희 방송실 앞에서 장난친다고 나 먼저 반에 갔었잖아. 가는 길에 또 우연히 만난 거야. 먼저 인사해오길래 나도 인사했지. 야자 하냐고 물어보길래 안 한다고 반에 들렀다가 집에 간다고 하니까, 자기도 이제 집 갈 건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길래 거절을 하고 싶은데 뭐라 거절을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고개 끄덕였지.




"아, 신기하다. 우리 같은 동네였구나."


"그러게."



계속 나한테 들이대는게 뭔가 좋아하고 있는 걸까, 하고 잠깐 생각은 했었는데 확신은 없었거든. 무작정 그렇게 확신 지어버리면 안될 것 같아서. 이상하게 집 갈때만 되면 항상 얘가 보이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에 같이 갔지. 


근데 어제 집 같이 가는 길에 걔네 집 데려다주고 나도 가려고 하는데, 날 붙잡는 거야. 이제 같이 집 가는 게 조금 익숙해져서 얘가 나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씩 잊혀지고 있었거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얘기를 듣고 있는데 뭔가 분위기가 묘한 거야. 고백할 분위기 알지. 





***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받아줬어?"


"아, 아니... 아까 말했잖아. 거절하는 방법 알려달라고, 너한테. 미안하다고 거절을 했는데, 오늘 아침에 학교에서 마주쳤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는 거야. 사실 어제 고백 받은 사이에 다시 인사를 받기에도 나는 좀 그렇거든."



아, 하긴... 경수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나 같아도 분명 고백을 거절한 상태여서 어색할 텐데 인사를 하다니, 그 여자 애 뭔가 독한 기집애구나! 어떻게 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경수의 모습이 귀여워서 좋지만 뭔가 시원한 해결책을 주고 싶다. 나한테 예쁘다면서 경수가 직접 물어봤잖아! 아, 물론 예쁘다는 건 상관 없지만... 하하하, 그냥 되새기고 싶었다. 


그나저나 경수가 고백을 다 받고... 물론 경수를 무시하는 발언은 절대 아니지만, 뭔가 그 김사나라는 여자 애가 어떤 앤지 알고 싶어졌다. 좋은 앤지 뭔지 알아야 우리 경수를 눈물을 머금고라도 보내줄 수 있으니까...(?) 경수가 알게 되면 날 혼낼지도 모르지만 난 상관 없었다!





***





사실 경수한테 제대로 된 해결책을 주지 못해서 영 아쉬웠다. 경수가 직접 내 이름을 부르면서 도와달라고 했는데... 도와주지 못할 망정 난 지금 김사나를 보러 경리네 반 앞에서 우물쭈물 대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나 힘들구나.



"oo, 여기서 뭐해? 누구 찾아?"


"어, 경리야! 너 찾고 있었지! 너 잠깐만 와봐봐."



경리는 없는 건가 싶어 시무룩하게 우리반으로 돌아가자 싶었는데 뒤에서 누가 내 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더니 익숙한 예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바로 경리! 신나서 경리 손을 붙잡고 복도 끝 쪽으로 경리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지 주위를 살피고 목소리를 조금 낮춰, 너 김사나 알지? 하고 경리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물었다. 경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왜? 하고 물어왔다.



"아, 사실... 걔 너무 예뻐서 친해지고 싶었거든. 며칠 전에 길에서 봤는데, 걔가 김사나라고 하길래."




"아, 진짜? 그럼 사나도 좋아하겠다. 걔 친구 사귀는 거 좋아하거든. 인사 시켜줄까?"


"으응, 그럼 고맙지."



경리한테 사실대로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말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무엇보다 내 얘기가 아니고 경수 얘기이므로 쉽사리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누가보면 소문 퍼뜨리는 것 같잖아... 


경리는 알겠다며 반으로 쏙 들어가더니 김사나를 데리고 나오더니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김사나는 나를 보자마자 활짝 웃더니, 내 손 하나를 두 손으로 붙잡고는, 안녕- oo야, 하고 예쁜 미소를 보여줬다. 아, 미친... 같은 여잔데 반할 뻔 했다. 난 왜 이렇게 예쁜 여자들이랑 잘 꼬이는 걸까, 행복하게시리... 생각보다 나쁜 애 같지는 않아보였다. 왠지 경수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저 멀리서 함께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