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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22

홍일점













집에 오자마자 크나 큰 고민에 빠졌다. 서강준 이 사람이 정말로 나한테 연락을 하겠다는 건가... 마음 같아선 오빠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오빠한테 말하면 당연히 말릴게 분명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 잠깐 차단을 풀고서 휴대폰을 침대 위에 가만히 놔두고 시계만 바라보고 있는데, 저장하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번호가 휴대폰 화면에 떠서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미친..."



진짜로 전화하잖아, 이자식? 아니, 문자나 카톡도 아니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전화를 한다고? 밤이라서 자신감이 생기는 건가, 뭔진 모르겠지만 받아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도대체 뭐 때문에 나 따위한테도 이러는 건지 궁금했다. 이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예쁘고 좋은 여자들이 줄을 설텐데 말이다. 그래서 결국 받아버렸다. 받을 용기는 있었지만 먼저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아서 여보세요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중이다.



-"oo야? 이제 전화 받았네. 나 전화 많이 했었어."


"...아, 죄송해요. 이제 봐서... 근데 웬일로...?"


-"웬일이긴, 너랑 약속 잡으려고 전화했지. 카페 가기로 했잖아. 기억하지?"



미친! 이 사람 진심인가? 카페가자고 한 말이 진심이었어? 나 따위랑 카페를 가다니 말도 안 된다. 내가 스엠고 다녔을 시절에도 아는 사이였지만 어디에 가자거나 사적으로 단둘이 만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근데 굳이 내가 홍점고로 전학을 오고 나서, 이렇게 뜬금없는 시점에 나한테 들이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나한테 지가 원하는 거라도 있나... 아무 이유없이 들이댈 사람은 절대 아니다. 충분히 확신하고도 남지.





***






"야, 나 담배 끊어볼려고."


"엥? 웬일이야, 네가."




"한... 10분 후면 다시 피겠네."



그때는 바야흐로, 내가 담배를 끊겠다고 난리를 피웠을 때다. 도대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서강준 선배가 담배 안 피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주워들었을 때의 일이다. 생각해보면 선배는 내가 담배 피는 걸 알고 있잖아? 그때 너무 자연스럽게 나한테 불을 붙여주길래 여자가 담배를 피던 말던 신경을 안 쓰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그냥 나한테 신경을 안 쓰는 거였구나... 이제야 깨달았다.



"oo야, 안녕."


"안녕하세요..."



담배를 끊은지 무려 3일이나 됐다. 옆에서 세훈이랑 혜리는 작심삼일을 넘기는 거냐며 호들갑을 떨어댔지만 아무렴 어때, 선배가 나한테 인사를 해줬다는 게 중요했다. 항상 인사는 이렇게 먼저 잘해주지만... 그 이상의 진도가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건 내가 먼저 들이대야 하는 건가, 싶어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고백하겠다고?"


"야, 멍청아. 내가 언제 고백한댔어? 밥 먹으러 가자고 한다 했지."


"밥 먹고 나서 뭐, 카페가? 카페가서 쳐먹은 다음에 뭐, 선배 좋아해요 하고 고백이나 하겠지."



오세훈의 말에 할 말을 잃어서 그만 입이 꾹 다물어졌다. 근데 얘 말처럼 이렇게 적극적으로 고백할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그냥... 아주 소심한 발언 한마디 정도? 아, 근데 왜 마음 속에서 쓸데없는 용기가 생기는 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생각이 든 바로 그 날에, 선배 반까지 올라가 아주 용기있게 선배를 붙잡았다. 선배, 하고 말을 하자마자 바로 부끄러움이 회오리 감자 뺨치게 솟구쳤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가 선배 반까지 찾아와서 붙잡았을까 싶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도 오랫동안 아무 말없이 선배를 붙잡고 있었는 탓일까, 우리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oo야, 왜? 무슨 일 있어?"



난 이때까지만 해도 이자식이 천산 줄 알았다. 나한테 항상 다정하게, oo야 하고 불러줘서 그런가... 내가 말을 할 때까지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는 행동에 감동을 받고 다시 용기를 내 데이트 신청을 하려고 하던 찰나, 우리 둘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더니 나와 선배 사이가 두 배로 떨어져 있게 되었다.




"강준아, 여기서 뭐하고 있어? 밑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안해, 초롱아. 얘가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듣고 가려고 했지."



그때 알았다. 이 선배는 내가 아니여도 이름을 불러줄 여자가 많구나, 하고. 솔직히 나한테 밉보일 짓을 한 건 아니다. 나랑 사귀고 있는 상태도 아니고, 내가 선배 여자 관계에 대해 신경을 쓸 자격도 없다는 걸 알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여자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당연히 나한테 좋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서 할 말들을 다시 속으로 꾸역 꾸역 집어 넣었다.





***





그리고 그 다음날, 혜리와 세훈이를 집합시켜 어제 있었던 일을 한톨도 빠짐없이 말해주었다. 세훈이는 어제도 서강준을 봤으니 아무렴 그렇겠니,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혜리는 얼마나 호들갑을 떨던지, 마치 전화가 올 때 나의 상태와 같았다.



"야, 그래서 너 날짜 잡았어?"


"아니... 이번주는 바쁠 것 같다고 하니까 다음주는 어떻냐고 물어보길래 다음주는 잘 모르겠어서 다시 연락드린다고 했어."




"야, 그냥 나는 너 같은 거 만날 생각이 없다! 하고 똑바로 말했어야지. 그래야지 연락을 안 한다고, 그런 것들은."



혜리의 말이 맞았다. 아, 내가 좀더 확실히 끊어냈어야 했는데... 뭐야, 나 아직 서강준한테 미련 있는 거 아니야? 이정도면 의심이 되는데...? 아니야, 미련은 무슨. 우리가 사귄 사이도 아니고 진짜 별거 없는 사인데 그럴 리가 없다.




"너 진짜 만약에 그 선배가 사귀자고 하면 어떡할 거야? 받아줄 거야?"


"야... 넌 혹시나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그럴 리가 없잖아."


"그니까 진짜 만약에라고 했잖아."


"만약에라도 그럴 일 없거든. 넌 경리나 만나러 가."



오세훈 얘는 아예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 얼른 가버리라며 손으로 훠이훠이- 저었는데, 장난스럽던 표정을 풀고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받아주면 안돼 하고 단호하게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얘는 공과 사가 너무 분명해서 가끔 무섭다니까... 세훈이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나 경리 만나러 감 이라며 손을 흔들더니 카페 밖으로 나가버린다. 하여간 저 사랑꾼...





***





박찬열은 민석 오빠한테 끌려가서 무슨 농구 수업인가 뭐 같이 받고 있다던데, 민석 오빠가 농구라니... 하핫, 좀 귀여운 걸?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되겠다. 민석 오빠 귀에 들어가면 난 아주 아작날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세상 일(?) 때문에 변백현을 끌고와 집에 데려다달라고 협박을 시킨 후, 같이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짝꿍아, 누가 너 쫓아와? 왜 계속 주변을 살펴, 무섭게."


"응, 나 쫓기고 있거든. 너 나 지켜줘야 한다? 나 버리고 가면 안돼."




"아... 당연하지. 나 싸움 잘해."



그걸 그렇게 손 떨면서 얘기한다고? 쳐발릴게 분명하구나... 내가 지금 가장 걱정되는 상황은 서강준이 또 짠- 하고 등장하는 상황이다. 그러면 옆에 있는 변백현으로 쉴드 치던가 해야지. 진짜 너무 긴급한 상황이면 남자친구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요새 틈만 나면 서강준이 훅- 하고 들어와서 큰일이다, 정말.



"oo야."



변백현이 부르는 짝꿍아, 와는 다른 호칭이 들리길래 바로 팔에 소름부터 쫙 끼쳤다.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진짜 무섭다, 이정도면. 왜 내가 가는 길마다 이렇게 마주치는지... 후. 옆에 있는 변백현한테 가만히 있으라며 눈치를 주었다.



"우리 언제 만날지 정해야지. 옆에는 친구야?"


"아..."




"남자친구입니다."



...띠용? 내가 변백현한테 내 작전을 말했던가? 잘 기억이 안 나네. 아니지, 쉬발. 말 안했잖아! 저 자식은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싱글벙글 웃으며 남자친구라고 말한 거야? 뒷감당 어떻게 하려고? 변백현의 훅 들어오는 공격에 서강준은 물론이고, 나도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더 웃긴 건 나보다도 서강준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그래? 하고 재확인을 하던 것이다. 근데 얘는 내가 입 열 시간을 주지도 않는 건지, 바로 네 하고 나 대신 대답을 하였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진작에 말을 하지. 내가 이상한 사람 될 뻔 했네. 그럼 oo야, 늦었는데 조심해서 가. 다음에 보자."


"아, 네에..."



서강준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는 변백현의 정강이를 팍- 하고 차서 뭐하자는 거냐며 소리를 빽- 질렀다. 변백현은 특유의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더니만, 그걸 원한 거 아니였냐며 멍청하게 물어왔다. 이 자식, 때려죽일 수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