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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홍일점 (完)

[엑소 역하렘 빙의글] 홍일점 24

홍일점

 

 

 

 

 

 

 

 

 

 

 

 

수업시간에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는데, 왜 자꾸 머릿 속에 서강준이 떠오르는지... 진짜 변백현 말대로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건가? 근데 이 감정은 좋아하는 게 다인, 그런 간단한 감정이 아니었다. 차라리 좋아한다는 확신만 있었어도 오빠한테 달려가서 내 상황이 이렇다, 그러니까 날 좀 줘패달라, 이렇게 말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 증거 없이 오빠한테 쳐맞을 수는 없는 거잖아? 

 

아, 혜리랑 세훈이한테 고민상담이나 받을까.

 

 

 

 

***

 

 

 

 

"서강준 그 선배가 그렇게 매력이 풀풀 넘치는 그런 사람이었던가."

 

"야, 지금 그 인간 평가해달라는 게 아니잖아."

 

"아, 그건 그렇지. 근데 내가 보기엔 너 그 선배 좋아하는 거 맞는 듯."

 

 

오세훈의 결론이 이랬다. 아니, 약간의 예상은 했지만 얘 입에서 직접 들으니까 조금 더 충격이었다. 아, 나 절대로 안돼. 나 갖고 놀려는 그 인간한테 내 마음을 줄 순 없잖아? 그건 당연한 거라고! 여자로서 더이상 상처(?)를 받을 순 없지. 혜리는 옆에서 조용히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더니만, 오세훈한테 조용히 하라며 구석으로 밀어버린 후, 나에게 눈을 맞췄다.

 

 

"너 아니면 남친 있는 척 하면 되지."

 

"쟤 남친 있던데."

 

"엥, 진짜?"

 

"야, 오세훈 너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남친이 어딨어?"

 

"변백현? 그 친구랑 사귀는 거 아니였냐. 나 진짠 줄."

 

 

변백현 이자식, 도대체 사귄다는 구라를 어디까지 펼치고 다니는 거야? 다른 학교인 얘네가 어떻게 이 구라를 알고 있냐고! 넌 앞으로 없는 목숨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하핫. 진짜로 오세훈 말을 믿을 뻔한 혜리를 간신히 구해내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오세훈의 싸대기를 때리려다가 조금 남은 우정(?) 때문에 등짝으로 위치를 변경했다. 

 

 

"아, 진짜? 뭐야, 그럼 그 선배 네가 남친 있는 줄 알면서도 담배 불 붙여주고 집적 거린다는 거야? 완전 미친 놈이네."

 

"그 인간 분명 나한테 관심 있어서가 아니라, 재미 볼려고 이러는 게 분명해."

 

"너 재미 없는데."

 

"야! 너 진지함이라고는 커피랑 같이 꿀꺽했냐? 경리 얼굴 더이상 보기 싫으면 계속 그렇게 짓껄이도록 해."

 

 

오호라? 경리 얘기가 나오니까 이제 입을 꾹 다물고 있네, 이자식. 아, 진짜로 담배 불 붙여주는 그 기억이 짜릿해서(?) 계속 내 마음이 이지경인가. 그런 거면 더 짜릿한 사람한테 찾아가서 더 짜릿한 경험을 만들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걸. 이러면 우리 오빠가 가만 안 있겠지. 아니, 그래도! 동생이 지금 남자 하나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친오빠가 그것도 못해줘? ...아니야, 서강준보다 짜릿한 사람이 세상에 어딨어. 

 

 

"아니면 고백이라도 해서 확 차여버려."

 

"엥?"

 

"네 말대로 그 선배가 재미보려고 하는 짓이면 네가 고백해도 차지 않을까. 넘어왔으니까 이제 차는 거지. 그러면 너도 차인 기분에 그 선배랑 이제 완전히 쫑나는 거지. 어때?"

 

"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근데 너무 도박인데."

 

 

난 이때 그만 뒀어야 했다. 도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짓을 하려고 하다니. 오세훈! 너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소중한 친구한테 이런 크디 큰 도박을 시킬 수가 있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다.

 

 

 

 

***

 

 

 

 

"..."

 

"...야, 미안. 난 이렇게 될 줄 몰랐지."

 

 

혜리와 세훈이와 고민 상담을 한지 정확하게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어제는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다. 설명하기도 싫은데... 일단 미안하다고 하는 오세훈 얼굴에 죽빵을 꽂고 얘기를 시작해볼까.

 

 

 

 

***

 

 

 

 

그러니까, 어제. 그러니까 고민상담을 받고 난 그 다음 날. 이렇게 된 거 도박이라도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니 고백을 도전해보기로 했다. 종례가 끝나자마자 내 옆에 붙어버리는 박찬열과 변백현에게 아주 아주 진지한 얼굴로 급한 일이 있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라고 말한 후 후다다닥 학교 밖으로 뛰쳐나와 우리 학교 학생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와서 서강준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음, 내가 무슨 고백을 밥 먹듯이 해본 사람도 아니고... 이게 뭐라고 은근히 긴장이 되더라? 서강준이 말한 카페에서 볼려고 카페에 도착했는데 기다리고 있었다, 이사람. 뭐야, 나도 근처에 있어서 빨리 온 줄 알았는데, 왕 빠르네.

 

 

"우리 oo가 나한테 할 말이 다 있고, 무슨 얘기야?"

 

"...선배, 저 바로 말할게요."

 

"응."

 

"저 선배 좋아하는 것 같아요..."

 

 

눈을 맞추지 않고 말해서 서강준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나 궁금해져 시선을 위로 조금 옮겼는데, 이자식 웃고 있다? 미친... 혹시 자기 뜻대로 내가 넘어왔다는 생각에 너무 즐거워서 미쳐버린건가? 아니면 나를 찰 수 있다는 생각에 돌아버린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도저히 예상이 가지 않아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는데, 이 인간 제대로 미쳤나보다. 나도 너 좋아해. 이러는데 이게 진짜 꿈이 아닌가?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였다. 세훈아, 네가 원한 것도 이게 아니잖아! 나 어떡해, 오세훈?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 적어도 1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냥 바로 말한다 하고, 내 인생에서 꺼져달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나을 뻔 했다. 서강준의 마지막 말 이후로 나는 이 세상에 남고 싶지 않아졌다.

 

"그럼 우리 사귀면 되겠다, 그치? oo야."

 

 

 

 

***

 

 

 

 

그 뒤로 계속, 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고, 하면서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말을 생각해봤지만 이 인간에게는 더이상 통하지 않았다.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오세훈한테 전화를 걸어, 야... 오세훈... 하면서 말을 벌벌 떨었다. 얘가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무슨 일이냐며 물었는데, 순간 욕이 나올 뻔 해서 몇 초간 참다가, 너 때문에 사귀잖아^^... 라고 이를 갈며 말했다. 

 

 

"...야, 나 진짜 너랑 사귈 걸 그랬나."

 

"어? 짝꿍아, 지금도 늦지 않았어. 사귈래?"

 

"하... 차라리 그게 낫나. 근데 나 사고 쳤어."

 

"무슨 사고?"

 

 

집에 돌아와보니 박찬열과 변백현이 현관 앞까지 나를 마중나와줬다. 얘네 무슨 우리집 댕댕이로 취직했나. 주인 기다리는 댕댕이 같네. 하, 인생 졸라 슬퍼. 나 정말 서강준이랑 사귀는 거야? 진짜로? ...존나 이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은 복잡 미묘한 기분 어떻게 하냐.

 

 

"나 서강준이랑 사귀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