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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FATAL (完)

[변백현 빙의글] FATAL 01



FATAL













또각 또각- 하는 구두굽 소리가 복도에서 울려퍼지며, 입술에 짙은 레드 립스틱가 발린 oo는 벽을 손으로 짚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더니 꼭 감고 있던 두 눈을 힘겹게 떠서는 바로 앞에 있는 문고리를 잡고, 그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들어서자마자 썩은 내가 진동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충 저를 바라보고 있는 몇몇 이들에게 고개를 까딱 숙이며 인사를 하던 oo는 구석 쯤에 자리를 잡고 힘겨운 몸을 앉혔다. 




"제 3구역은…"


"됐네요, 언제부터 사령관 님께서 저희 구역을 신경쓰셨다고. 앞으로도 쭉- 신경 안 써주시면 감사하겠어요."




조금 늙었지만 건장하게 보이는 중년의 남자를 째려보며 입을 연 oo였다. 남자의 말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할 말을 미리 정해놨다는 듯이 쉬지 않고 말을 줄줄 내뱉었다. 




"하지만, 이번 퀘스트는 자네 구역의 동료들이 많이 힘들었을 걸세."


"제 부하는 제가 지켜요, 그런 소리는 집어치우시죠. 이런 거지 같은 회의도, 없는 시간 겨우 쪼개서 온 거니까 회의 다운 회의를 해보는 게 어때요?"




oo의 버릇 없는 말임에도 남자는 oo를 엄하게 다스리거나 그러지 않고,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바꿔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흘려보냈다. oo는 저의 부분이 끝나자 한손으로 턱을 궤며 회의 내용을 대충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보냈다. 







하지만,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회의 내용 중 하나가 oo의 귓 속에 아주 정확히 파고들었다. 




"제 7-15구역이 현재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부상을 많이 당한 모양입니다."


"음? 그거 의외군, 그 쪽 구역은 변백현 상사가 담당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맞습니다. 하지만 변백현 상사 님께서도 많이 힘드신 지, 작전 상 후퇴한다고 합니다."




두 남자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oo는 두 눈을 또르르 굴려가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가도 의자에 기댄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사령관이라고 불리는 남자에게 한마디를 남기고는 회의실 밖으로 유유히 떠났다. 




"저 잠깐 다녀올 게요."







***







벌써 폐허가 돼버린 마을 곳곳을 훑어보던 oo는 골반에 장전된 리볼버 쪽에 눈길을 한번 주고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하나하나씩 옮겼다. 사실, 아까 회의 중에 백현의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oo의 생각은 오직 그 쪽을 향해 있었다. 백현과 오래 전부터 적과 적 사이던 oo는 7-15구역이 부상을 많이 당했다는 사실에 눈이 반짝 틔이며, 마치 희망을 얻었다는 표정으로 백현이 있는 곳까지 한걸음에 달려오게 되었다. 


코 안으로 풍겨들어오는 시체 썩은 내에다가, 퀘퀘한 냄새. oo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이리저리로 저어댔다. 그러다가도 어디선가 익숙한 피냄새가 나는 것 같아, 창고로 보이는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운 좋게 그 안에는 백현이 숨을 헐떡대고 있었다. 




"…와, 변백현이. 완전 꼴이 말이 아니네?"


"…하아, 네가 여기까지 오네…?"







헐떡 대며 숨을 고르고 있는 백현의 모습을 보니, oo의 입가에는 저절로 웃음이 새겨졌다. 피범벅인 모습을 보니 불쌍해보이는 동정심이 아주 조금이나마 들긴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곧이어 백현의 앞에 쭈그려 앉더니, 백현과 눈을 마주했다. 




"좀 전까지 회의실에 있었거든."


"…"


"근데 있지, 네 얘기가 들려오는 거야. 나 원래 회의 시간에 집중 못 하잖아. 네 까짓 거 얘기 하나 나오니깐, 내가 얼마나 집중이 되던지-."




잔뜩 흐트러진 백현의 앞머리를 매만지던 oo는 피가 굳어져 있는 백현의 볼을 손가락으로 슬슬 만져댔다. 꽤나 따가운 모양인 지, 백현은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다시 눈을 떠 oo와 눈을 맞췄다. 




"난, 널 싫어하지 않아."


"…"


"어쩔 수 없잖아. 넌 나랑 적인데, 그치? 미안하게 됐어."




앉아있는 백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 oo는 백현의 다리 쪽에 앉아 입술 위를 혀로 살짝 축인 다음,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강도로 입을 맞대었다. 힘을 뺏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체력이 바닥난 이상 뺏을 힘도 없을 뿐더러 oo는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백현의 힘을 뺏고 싶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냥 단지, 백현을 끝장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점점 힘이 빠지는 듯한 백현의 모습에 승리의 미소를 짓고 맞댄 입술을 떼려고 했을까. 백현이 갑자기 입술을 떼더니, oo의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맞춰왔다. 그리고, 




"…!"







입술을 더 붙여왔다. 놀란 oo는 눈을 크게 떠, 이게 무슨 상황인 지 눈을 굴려가며 파악을 하기 시작했다. 




"으…!"




곧 백현의 혀가 oo의 입 안에 들어오고, 혀를 섞어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oo는 눈을 반 쯤 뜬 채, 새어나오는 발음으로, 잠시만… 하고 말해왔지만, 백현은 oo를 풀어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점점 빠지는 힘에 몸이 축 늘어지고, 백현이 oo의 허리를 받쳐주고 있는 덕분에 간신히 몸을 겨눌 수 있는 상황이었다. 거의 반 쯤 정신이 나간 oo를 꼭 붙잡은 채 계속 입을 맞춰나가는 백현이었고. 곧 oo의 간신히 뜨고 있는 두 눈이 감기더니, 백현의 품 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백현은 oo가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oo의 등을 손으로 받쳐서 다치지 않게 해주었고. oo의 힘을 빼앗은 탓일까, 컨디션이 좀 전과와는 많이 다르게 아주 좋아졌다. 




"…"




백현은 일단 자신의 겉옷을 벗어, oo에게 덮어주고 얼굴을 손등으로 살짝이 쓸어 매만졌다. 혼자 이 창고에 놔두고 가기에는 미안하긴 하지만, oo라면 혼자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백현은 oo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더니 가벼운 발걸음으로 창고 밖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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