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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설렘주의 (完)

[오세훈 빙의글] 설렘주의 06


[오세훈] 설렘주의







몇 십분이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난 oo는 몇 달전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찾으러 제1창고실로 들어왔다. 무슨 종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쌓여있는 지, 종이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 많은 종이 천국에서 어떻게 그 날 자료만 딱 찾는데? 말도 안 돼! oo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도 꼭 찾아야 하는 자료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씨, 컴퓨터에 저장시켜 놓을 걸. ooo, 바보!"


oo는 결국 창고실에 쭈그려앉아 가장 앞에 있는 종이 더미들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 이건 5년 전거잖아...? 이러다가 회사 처음 만들어졌을 때 것도 있겄어. 이런 유물들을 만지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안 드는데, 도대체 언제 쯤 몇 달전의 자료가 나올까 싶었다. 

그렇게 열심히 쭈그려앉아 종이더미들을 보고 있는데, 책꽂이에 가득 끼워져 있는 종이들이 자리가 없었는 지, 우수수- 하고 oo 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여름이라 위 아래로 짧은 옷을 입고 있는 oo였기에, 여기저기 살이 종이 때문에 베이고 말았다. 울상을 지으며 상처를 바라보던 oo는 나중에 세훈에게 있었던 일을 다 말하며 스트레스를 풀자 싶다가도, 앞에 놓여져 있는 종이를 보고 소리를 질러댔다. 


"꺄, 찾았어!"


oo는 그렇게 상처가 난 것도 잊어버린 채, 창고실에서 빠져나와 종이를 펄럭이며 수정에게로 가서 자료를 찾았다며 헤실 헤실 웃어보였다. 덕분에 그 받기 어려운 수정의 칭찬도 받아내었다. 




***




"그랬어?"


oo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고구마라떼를 쭉 들이켰다. 세훈은 oo에게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어느 새 길어서 눈을 찌르려고 하는 oo의 앞머리를 매만졌다. 


"근데 너, 이거 상처 뭐야."

"상처? 어, 이거 뭐지... 아아, 아까 창고실에 가서 자료 찾느라고. 그때 위에서 종이들 막 떨어졌었어."

"조심 좀 하지. 하여간 칠칠 맞지 못 하게."


걱정은 못 할 망정, 칠칠 맞지 못 하다고 하는 세훈이 미웠는 지, oo는 입술을 뾰로퉁하게 내밀며 말하였다. 


"난 조심했는데, 종이가 조심 안 했어."



어쩜, 어린 아이도 생각하지 못 할 귀여운 말들을 내뱉는 건지, 세훈은 꽤나 의문이었다. oo의 말에 세훈은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 종이 말이야."


당연한 걸까,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세훈의 볼에 짧게 입을 맞춘 oo는 세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속은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세훈은 음, 하고 말을 끌다가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 때문에 난 4시에 잤다고-."


oo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훈은 왜, 부터 시작해서 피곤하지 않냐며, 자기 만나도 되냐며, 꼬치꼬치 물어댔다. oo는 그만 좀 하라며, 세훈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꾹- 누르더니, 세훈의 말을 끊어버리고는 대답했다. 


"아침에는 엄청 피곤했었는데, 지금은 괜찮아. 어제 야근하고 너랑 전화하면서 집에 가는데, 니가 나 따라왔었잖아."

"아? 그러고보니 그런 것 같기도."

"너 혼자 집에 못 갈 것 같아서 데려다주고, 집에 가서 일 좀 더 하다가 잤어."


oo의 말을 들어보니, 간간히 새벽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면서 세훈은 괜찮냐며 oo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oo는 그런 세훈의 손길을 받는 게 기분이 좋았는 지, 눈을 감으며 말 하였다. 


"응, 나 술 째릴 때마다 오빠가 맨날 데릴러 오잖아."

"째려? 야, 너 누가 그런 말 쓰랬어. 누구야, 불어."


저번부터 그렇더니, 점점 애 말이 험악해지잖아. 세훈은 oo의 손등을 아프지 않게, 약하게 찰싹- 때리고는 누가 이런 말 가르쳐줬냐며 혼을 내기 시작하였다. oo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세훈을 올려다 보았고, 세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설마 박찬열은 아니겠지?"

"응, 맞아. 나 며칠 전에 열이랑 통화 했었거든."


뭐라고? 어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oo를 보고, 세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찬열은 oo와 어렸을 적부터 친한 소꿉 친구였고, 다른 남자들이랑은 가까이 하지 않더라도, 항상 찬열과는 가까이 지내더라. 물론 친구로서 그렇긴 하지만, 찬열이 oo를 대하는 태도부터 무언가 친구라고 하기에는 이상했다. 


"누구 마음대로 통화하래? 나 허락한 적 없어."

"나는 걔 남자로 안 느껴진다구. 완전 여자 같은 애잖아?"

"넌 그렇게 덩치 큰 여자 봤어?"


언제 자신의 휴대폰까지 가져갔는 지, 찬열과 했던 문자를 올려다보는 세훈이었다. oo는 딱히 찔리는 부분이 없었는 지, 세훈의 행동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였다. 세훈은 문자 하나를 보더니, 기겁을 해서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 하였다.


"야, 이 자식 왜 하트 붙이고 말 해?"

"그거야 나도 모르지? 나는 하트 하나도 안 붙였어! 완전 띠껍게 말 했는데?"

"너 그런 말 쓰지 마. 박찬열이랑 연락도 하지 말고."


oo는 갑자기 단절되어버린 찬열과의 연락 때문에 울상인 표정을 지었다. 왠만하면 이 표정으로 세훈의 모든 화가 풀리긴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세훈은 그런 표정을 지어도 소용 없다며, 엄하게 oo를 가르치려고 들었다. 결국 oo는 세훈이 화내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꼬리를 내려버리고는 알겠다며, 연락하지 않겠다며, 수긍하였다.


"으응, 알겠어어. 오빠가 싫어하는 건 나도 싫으니까, 안 할게."


"아이, 예쁘다. 내새끼."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것 같아, 카페 밖으로 나와 집 쪽으로 걷고 있는 세훈과 oo였다. oo는 가만히 걷다가, 옆으로 휙 돌아보며 세훈을 올려다보고는 말했다. 세훈은 그런 oo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왜? 하고 물었고. 


"오빠는 여자랑 연락 안 해?"

"오빠 못 믿는 거야?"

"못 믿는 건 아니구. 나는 최진리 그 여자가 오빠한테 혹시나 연락할 까봐, 걱정하는 마음으로?"


싫어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나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느낀 세훈은 미안하다는 마음으로 oo의 볼을 만지며 말 하였다.


"일 아니면 연락 안 받아줘. 그 여자 받아주면 시도 때도 없이 문자오거든. 진짜 싫다."

"아... 우리 오빠 어떡해, 너무 잘 생겨도 문제라니까?"


질투를 할 만도 한데, 최대한 저를 배려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oo가 세훈의 눈에는 마냥 예뻐보이기만 하였다. 찬열과 하지 말라는 연락도 거절할 만한데, 이렇게 잘 들어주는 걸 보니, 여자가 아니라 천사를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빠, 안녕!"

"응, 들어가서 일 하지 말고, 곧바로 자. 알겠지?"


oo는 세훈의 말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는, 세훈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술에 쪽- 하고 짧은 입맞춤을 하였다. 세훈은 점점 멀어지는 oo의 뒷모습을 보다가도, 자신의 집 쪽을 향해 걸었다. 




***




"오빠 말대로 얼른 자야겠다. 으으, 피곤해에."


집으로 들어온 oo는 간단하게 씻고, 이제 거실에서 양치를 하고 있는데. 소파에 아무렇게 던져놓은 휴대폰이 지잉 지잉- 하고 긴 진동을 울렸다. oo는 당연히 세훈이겠지 싶어, 수신자도 확인을 하지 않고 바로,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았다.


-"oo야아."

"응? 열이?"


하지만 세훈의 목소리와는 딴 판인 찬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자, oo는 적지 않게 당황해 버렸다. 좀 전까지 세훈에게 찬열과는 연락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였는데. 근데 얘 말하는 게 좀 이상한데?


"열아, 술 마신 거야?"

-"응, 쩨끄음... 우리 oo 오랜 만에 보고 싶어어."

"혼자 있어?"

-"으응, 집 가고 있다아."

"...너 어딘데, 지금?"


물론 찬열이 한 두살 먹은 어린 애는 아니지만, 그래도 혀가 이렇게 꼬인 정도라면 몸은 얼마나 가누지 못 하고 있을 지, 저절로 상상이 되었다. oo는 대충 양치를 끝내고, 집 밖으로 나와 찬열의 집 쪽으로 냅다 달렸다. 


"박찬열!"

"어어?"


역시나. 안 봐도 비디오였다. 몸을 가누지 못 하고 있는 찬열의 모습이 보였다. oo는 찬열에게로 뛰어가, 찬열의 팔을 붙잡고는 냅다 소리를 질렀다. 찬열은 시끄러운 oo의 목소리에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헤실 헤실- 웃어보였고.


"왜 혼자 이렇게 걸어가고 있어, 이 바보야!"

"진짜 oo 올 줄 몰랐네... 대박이다, 진짜."

"대박은 무슨. 야야, 덩치값 좀 해라. 세훈이가 너랑 붙어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특별히 온 거야. 알아?"

"아아, 오세훈은 좋겠다아."


술에 잔뜩 취해서는 헛소리를 하는 찬열을 부축한 채로 찬열의 집 쪽으로 슬슬 걸어가는 oo다. 피곤해서 일찍 자려고 했는데, 왜 자신이 밖에서 이러고 있는 지. oo는 헛웃음이 저절로 입 밖으로 삐져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헛소리를 해대는 찬열의 입을 테이프로 꽁꽁 감아버리고 싶은 정도였다. 


"우리 예쁜 oo랑 사귀고. 나도 oo랑 사귀고 싶은데에."

"헛소리 하지 말고. 세훈이한테 다 일러버린다?"

"일러 일러. 그럼 나랑 사귀는 거야?"


oo는 찬열의 등짝을 세게 후려치고는, 덩치값 못 하는 찬열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걸어갔다. 아유, 세훈이가 들으면 기겁을 하겠네. 비밀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