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1/설렘주의 (完)

[오세훈 빙의글] 설렘주의 01




[오세훈] 설렘주의










 



"휴…"




얘는 끝까지 기다리게만 만드네. 한숨을 쉬며, 시내 한바퀴, 두바퀴, 세바퀴 째를 돌고 있었을까. 저 멀리서 헥헥 대며 뛰어오는 oo의 모습이 보인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세훈이 바라보자, 미안했는지 뒷머리를 슥슥 만져오며 고개를 푹 숙인다. 이 모습이 또 귀여워 보이네, 미쳤는 갑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세훈아?"


"어, 완전 많이."


"으앙… 오빠 미안해."




사실 화가 풀린 지는 오래였다. 뭐, 얼굴 보자마자 바로 화가 식던데? 그래도 세훈은 조금 더 놀려볼까 싶어, 화가 나있다는 표정을 계속 유지하였다. oo는 계속해서 세훈의 눈치를 보는데, 세훈의 표정이 풀릴 생각을 안 하니, 계속 고개를 푹 숙이고 세훈에게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이유를 설명하면 세훈에게는 분명 변명으로 들릴 테니까. 


빠른 년생인 oo는, 보통의 빠른 년생들처럼 빨리 학교에 들어갔다면 세훈과 동갑일 나이였지만, 그냥 원래 제 나이대로 학교에 들어간 탓에 어찌보면 세훈과 동갑이라고 할 수도, 어찌보면 동생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 덕분에 oo는 가끔식 세훈에게 세훈아, 또는 오빠, 라고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됐어, 도저히 너한테는 화 못 내겠다."




응? 방금까지 화내고 있었으면서. oo는 뭐냐는 듯 세훈을 큰 눈으로 바라보자, 세훈은 그렇게 쳐다보지마, 오빠 뻑간다 라고 말하고는 oo의 손을 잡아온다. 그러더니, 화난 척 한 거야 라고 말하며 머슥하게 웃어보인다. 




"척? 뭐야! 난 진짜 화난 줄 알았잖아. 얼마나 무서웠는데, 너!"


"야, 그래도 너 그렇게 큰 소리 낼 자격 없다? 나 거의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 이 찜통 같은 더위에."




하기야… oo는 세훈의 말에 이제 정신을 차렸는 지, 세훈에게 덥지? 하며 손을 휘휘 젓더니 세훈을 최대한 덥지 않게 해주었다. 세훈은 자신에게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는 oo가 너무 귀여워 보였는 지, 제자리에 서서 oo의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oo는 사람이 많은 시내에서 뽀뽀를 해오는 세훈 덕분에,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두 볼이 발그레져 있었는데, 꼭 빨간 색으로 색칠해 놓은 것 같이 붉어져 버렸다. 




"오세훈! 진짜 나 놀리는 맛으로 살지?"


"어. 어떻게 알았어?"


"너 미워. 나 오늘 팀장한테 개 까였단 말ㅇ…"




개? 너 방금 뭐라고 씨부린 거야? 


개?


개!?




"이게 요 입을!"




세훈은 oo의 말을 도중에 끊어버리고는 손바닥으로 oo의 입을 톡톡 쳤다. 입 조심!




"아, 응… 그, 혼났어. 팀장한테."


"왜 혼나셨을까, 뭘 잘못했길래?"


"잘못한 거 없어! 팀장이 나한테 자기가 원고 쓸 거 밀렸다고 마지막 부분만 손 봐달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했거든? 고맙다고도 못할 망정, 내 실력이고 스펙이고 다 들먹거리면서 양파 같이 깠어."


"우리 예쁜 oo, 깔께 어딨다고 깐데?"




세훈은 기분 나쁜 oo를 위로해주는 건지, oo의 뒷머리를 슥슥 매만져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랬구나, 내새끼. 그 나쁜 팀장한테 까이느라고 약속도 늦고. 그 팀장 안 되겠네.




"내가 아침부터 너랑 한 약속 때문에, 오늘 일 있어서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말 하고 다녔거든?"


"응응."


"그걸 알면서도 원래 퇴근 시간보다 1시간 반이나 늦게 마쳐줬어!"




있었던 일들을 말하니, 마음이 그제서야 풀리는 지 oo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는다. 세훈은 그런 oo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oo의 볼을 손가락으로 살짝 꼬집어주었다. 그리고 oo와 세훈은 손을 맞잡고 스피커에서 달달한 기타 연주가 나오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구마라떼 맞지?"


"어? 아, 아니… 나 아메리카노로…"




당연하다는 듯 고구마라떼로 시킬려고 하던 세훈을 말리는 oo였다. 웬일로 아메리카노를 먹는데, 얘가?


일단 세훈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oo에게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라고 말한다. 앉아있는 oo의 모습을 힐끔 바라보더니, 주문을 다시한다. 




"고구마라떼랑 아메리카노요."







***







"살 쪘냐고?"




세훈의 물음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oo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얘가 또 밖에서 무슨 헛소리를 듣고 왔는 지. 마시지도 못 하는 아메리카노의 냄새만 맡아댈 뿐이었다. 그걸 보던 세훈은 oo에게, 자신의 앞에 있는 고구마라떼를 내밀지만 oo는 고개를 내젓는다. 




"누가 그러는데? 누가 내새끼 보고 살쪘데?"


"그 팀장이. 나 못 괴롭혀서 안달이라니까. 회의 끝나고, 밑에 층으로 내려가는데 나 힐끔 보더니 뭐라는 줄 알아?"


"뭐랬길래 이럴까?"


"oo 씨 얼굴 터지겠어요-. 이랬다니까? 아니, 내가 얼굴이 터지든 말든 그쪽이 무슨 상관인데."




oo는 분한 지, 숨소리를 크게 낸다. 세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oo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준다. 세훈과 oo는 다른 연인들 처럼 서로 마주보는 것보다는 이렇게 서로의 옆에 앉는 걸 더 좋아한다. 세훈이 이번에는 oo의 손을 붙잡더니 손가락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근데… 요즘 오빠 만나서 많이 먹긴 하는 거 같아."


"그래서 이것도 안 마시는 거고?"




… 손가락으로 고구마라떼를 가리키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oo다. 내새끼, 밥보다 좋아하는 고구마라떼도 못 먹게 하고.




"오빠 눈에는 너무 예쁜데?"


"그래도 안 돼!"


"남자들은 너무 마른 거 싫어해."


"뚱뚱한 거보다는 좋잖아. 오빠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나한텐 충분히 네가 너무 예뻐보여."




세훈의 말에 oo는 진짜…? 하며 세훈을 올려다본다. 잠시 혼자 고민하는 것 같더니, 세훈 쪽에 있던 고구마라떼를 쏙 집어가 빨대로 쪽쪽 빨아마시는 oo다. 




"그럼 살 안 뺄래. 오빠 눈에만 예뻐보이면 됐어."


"아이, 예뻐. 잘 생각했어, 내새끼."


"나 돼지처럼 살 쪄도 버리지 마. 네가 버리면 나 갈 데 없어."




너같이 예쁜 걸 어떻게 버릴까 싶은 세훈이다. 고구마라떼를 쭉 들이키는 oo가 갑자기 아! 하고 소리치더니 크로스 백에 들어있는 종이들을 마구자비로 꺼내기 시작했다. 세훈은 일인가 싶어서 oo의 행동을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오빠, 난 도저히 못 고르겠어서. 오빠가 대신 좀 골라 줘."




자세히 보니 표지였나 보다. 종이 한장 한장을 세훈에게 보여주며 뭐가 가장 예쁜 지 골라보란다. 하나같이 oo가 직접 디자인 한 것들이라 그런 지, 세훈의 눈에는 다 마음에 들었다. 내심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세훈은 눈을 질끈 감고 아무 거나 골라버린다. 




"이거."


"이거? 역시 오빠도 나랑 같은 생각 했네! 나도 이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었어. 우린 운명이야!"




운명이라며 세훈의 손을 덥석 잡아오는 oo이기에, 세훈은 어어? 하고 당황해 했지만, 네가 좋으면 됐지. 눈 감고 고른 건 평생 비밀로 해야겠네. oo는 일 하나를 끝내서 기분이 좋은 지, 종이들을 주섬주섬 주워 다시 크로스 백 안으로 집어넣었다. 


시원한 카페에서 얼음 동동 띄어진 고구마라떼를 먹는 oo는 행복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세훈에게 선뜻 먼저 입술에 뽀뽀를 해왔다. 세훈은 갑작스러운 뽀뽀 공격에 놀랐는 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입술을 매만진다. 




"야, 한 번만 더."


"응?"


"네가 뽀뽀해오는 거 오랜 만이란 말이야. 맨날 내가 먼저 뽀뽀하고."


"…삐졌던 거였어?"




진지한 표정으로 삐졌는 거냐며 물어오는 oo에, 웃음이 빵 터져버리는 세훈이었다. 세훈은 장난치 듯, 응, 삐졌어 라고 대답했고. oo는 정말? 하고 되물어오더니, 작은 두 손으로 세훈의 두 볼을 감싸고는 아주 조금 더 길게 입을 맞춘다. 





"아,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는데. 너 보니깐 다 날라갔어, 힘든 거."


"나도."




oo와 세훈이 조금 늦은 저녁에 만나서 그런 지, 아까보다는 밖이 조금 더 깜깜해져 있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서로서로 주고 받으며 얘기를 하다가,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 묻어있는 oo의 얼굴을 본 세훈이 이제 그만 가자며 자리에서 oo를 일으켜준다. 회사에서 디자인 하랴, 세훈과 데이트 하랴, 어지간히 피곤한 oo였나 보다. 


밤 11시가 다되서야 카페에서 나온 oo와 세훈이다. 세훈은 이대로 oo를 보내기 아쉬운 지, 길 한복판에서 oo를 꼭 껴안았다. oo도 피곤했지만, 세훈과 같은 마음이었는 지 세훈의 허리를 꼭 감싸안았다. 그리고선 발 뒷꿈치를 들어 세훈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춰왔다.  




"예뻐죽겠네, 우리 oo."


"오빠, 오늘은 내가 데려다줄래."




누우면 바로 잠들 것 같은 얼굴을 한 oo가 데려다준다고 하니, 세훈은 그저 웃길 뿐이었다. 데려다주긴 이 꼬맹이가 어딜 데려다 줘? 데려다주기 전에 먼저 쓰러져 자버리겠는데. 



세훈은 oo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됐다고 말한다. oo는 세훈의 거절이 마음에 안 들었는 지, 감고 있던 두 눈을 뜨고는 세훈을 째려본다. 




"맨날 오빠만 나 데려다주잖아. 누가 오빠 잡아갈 수도 있는데."


"난 네가 더 걱정이다. 우리 예쁜 oo, 누가 데려가면 어떡해?"


"괜찮아. 누가 데려가면 머리 박치기 해서 기절 시켜 버릴게."




무슨 말도 이렇게 귀엽게 하냐. 세훈은 뭐가 그리 좋은 지, 헤실헤실 웃기에 바빴다. 안 되겠다 싶어 oo의 손을 잡고는 oo 집 방향 쪽으로 팔을 이끈다. oo는 뭐냐는 듯, 세훈을 따라오며 뭐야, 여기 우리집 방향인데? 라고 물어온다. 




"알아. 넌 다음에 데려다 줘. 오늘은 너 피곤해보여서 안 되겠어."


"으응? 아, 안 피곤한데. 나 멀쩡해."




멀쩡하기는. 괜히 고집 부리는 oo가 얄미웠는 지, 세훈은 긴 손가락으로 oo의 앞머리를 훽 하고 까버린다. oo는 그런 세훈을 째려보고는 데려다준다는 말을 그냥 속으로 삼켜버린다. 내가 데려다주나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