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ext 1/설렘주의 (完)

[오세훈 빙의글] 설렘주의 03




[오세훈] 설렘주의













"마음에 안 들어! 그 여자는 왜 이렇게 너한테 붙어다니는 거야? 진짜... 뭐가 있나 봐...!"




입을 쩍 벌리고는 뭐가 있나 봐! 하는 oo를 보고 웃던 세훈은 oo의 턱에 냉면 면발이 묻어서 손으로 떼어주고는 뭐가 있는데? 하고 물어보았다. oo는 냉면을 한 입 호로록- 더 먹더니, 젓가락을 든 채로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아하는 거네, 딱 봐도. 너 절대로 붙어다니면 안 된다. 내가 수시로 준면 씨한테 물어볼 거야."


"뭐야, 그럼 그 새끼랑 연락한다는 거네?"


"그렇게 되나?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세훈은 oo 쪽으로 고개를 조금 더 당겨, 나 믿는다며, 하고 oo를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세훈 때문에 놀란 oo는 고개를 뒤로 내빼며 당황스러운 듯 말을 더듬었다. 그런 oo의 말투나, 표정 덕분에 세훈은 웃음이 빵 터질 뻔 한 걸 간신히 막았지만. 




"ㄱ, 그렇지...! 믿지! 맞아, 난 오세훈 믿어."




좋다. 세훈은 oo에게 자신의 면들을 덜어서 oo가 더 먹도록 해주었다.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세훈의 행동에 oo가 냉면을 오물 오물 거리며, 배 안 고파? 하고 물어왔다. 




"너 먹는 것만 봐도 배 부르다."


"뭐래. 너 다시 너네 회사까지 가려고 하면 운동되잖아. 그럼 배고파진다?"




세훈은 괜찮다며 너나 더 먹으라고, oo의 뒷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한 oo는 남은 면들을 싹 다 먹어버리고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한 게 좀 오래 걸리는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화장실 안까지 들어가서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세훈이기에, 그냥 조금 더 기다리자, 하는 생각으로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을까. 갑자기 눈에 들어온 종이가방 덕분에 세훈은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너 배고플 때 먹으라고. 식으면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어. 준면 씨랑 나눠 먹으라고 넉넉하게 샀으니깐 많이 먹고. 아! 그 여자는 절대로 주지 말고!"




내새끼... 어떻게 이렇게 예쁜 생각을 할 수가. 







세훈은 종이가방을 들고 있는 oo를 보고 환한 미소를 짓더니, oo를 품 안에 쏙 안아버렸다. oo는 세훈이 너무 꼭 안아오는 탓에 숨이 막힌 지 주먹으로 세훈의 가슴을 살짝 콩콩 쳐댔다. 점심시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다니, 세훈은 마음 속으로 펑펑 울어댔다. 




"잘 가, 내 세훈."




oo는 아쉽다는 표정을 얼굴에 가득 담고는 세훈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세훈도 똑같이 oo에게 인사를 해주고, oo가 사라질 때까지 oo가 콩콩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oo의 뒷모습이 안 보일 때, oo가 사준 만두로 시선을 옮겼다. 완전 착해, 내 oo.







***







아까부터 세훈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기분이 안 좋은 지, 앞에 있는 준면을 째려보기만 하였다. 준면은 그런 시선이 느껴지지도 않는 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넌 안 먹어? 하며 세훈에게 물었다. 그래, 묻기라도 해줘서 고맙네, 참.




"야, 이게 네 거냐? 혼자 다 쳐먹게."


"어이 없네. oo 씨가 나랑 같이 먹으라고 했다며."


"근데 누가 네새끼 혼자 다 쳐먹으라고 했냐?"


"그럼 너도 쳐먹으면 되겠네. 뭔 상관이셔."




하긴, 준면의 말에 틀린 건 없었지만. 세훈은 뭔가 억울했다. 내새끼가 나 주려고 산 건데, 이 자식이 이렇게 열심히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깐. 만두를 한 번 보니, 또 oo의 생각들이 머릿 속으로 마구마구 흘러 들어왔다. 큰 일 났네,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서.




"점심시간 되자마자 그리 급하게 나가더니, oo 씨 보고 왔나 봐?"


"응, 최진리 씨가 나 불렀는데 oo 생각나더라고."


"그 사람안 네가 여자친구 있는 데도 붙어다니냐? 양심도 없네."




내 말이-. 하면서 oo가 사준 만두를 처음으로 입에 대는 세훈이었다. 물론 이런 말들을 진리가 없는 지금이라서 할 수 있는 얘기지만. oo가 진리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는 만큼, 세훈도 진리를 곱게 보지는 못 했다. 회사에서 만큼 소문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었고, 세훈 뿐만 아니라 다른 남 직원들에게도 집적거린다는 소문이 이리 저리서 들리므로. 







***







여보세요오... 하는 oo의 목소리에는 힘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곤함이 가득 들렸다. 세훈은 죽어가는 oo 목소리에 놀라며, 가장 먼저, 아파? 하고 물어왔다. oo는 힘 없이 피, 하고 바람 빠진 웃음 소리를 내더니 아니라고 말했다. 




"근데 목소리에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내새끼... 또 팀장이 깠어?"


-"그건 아니고, 요즘 팀장이 잘해주던데? 남자 생긴 건가... 근데 왜?"


"아, 그냥 뭐 하나 싶어서. 근데 너 이 시간까지 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세훈의 물음에 건너편 oo에게는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구나. 세훈은 아직도 oo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하지 말고 빨리 자라며, oo를 재촉하였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에, 빨리 디자인 완성 시켜야 돼. 네새끼 죽겠어, 세훈아-."


"꼭 내일까지 해야 하는 거야?"




어? 이제는 대답도 없네. 세훈의 말이 끝나도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는 oo였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통화를 하는 도중에 잠까지 들어버리고. 세훈은 그 작은 몸으로 많은 일들을 해내는 oo가 너무나 대견했고, 한 편으로는 미안한 마음까지도 들었다. 




-"oo야, oo 자는 거야?"


-"...으응?"




세훈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oo를 불러오니, 잠시 뒤에 oo가 으응? 하고 잠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아니, 이걸 대답이라고 해야 되나, 싶을 정도로 그냥 웅얼거림이었지만. 세훈은 그냥 대답 소리로 생각하기로 하였다. 




"아유, 오빠 전화 끊어야겠네. oo 자-."


-"으응... 난 내일 팀장한테 완전 까이게 생겼구만..."




마치 갓난 아기의 웅얼 웅얼 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뭐라 중얼 중얼 거리는 oo였다. 세훈은 뭐가 그리 좋은 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말했다. 




"사랑해, oo."


-"나두. 사랑해, 오빠..."







***







"으으, 내가 미쳤지, 미쳤다고."




oo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 어제 못하고 그대로 자버린 그래픽 디자인을 완성 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손들이 너무 빨라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을 정도로 빨리. 최대한 했는 성의라도 보이면, 수정이 그나마 덜 혼낼 것만 같아서. 그래도 안 까일 생각은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 oo 씨, 일찍 출근하셨네요?"


"네에...?"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oo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와 울상인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종대는 그런 oo의 표정을 보자마자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무슨 일 있어요? 하고 물어왔다. oo는 빠르게 움직이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로 중얼중얼 상황 설명을 하였다. 




"사실... 어제 디자인 못 끝내고 그대로 자버렸거든요. 저도 제가 언제 잠든 지 잘 모르겠지만..."


"아, 그랬구나-. 근데 오늘 아침에 정 팀장님 뵈었는데, 기분 좋아보이셨어요. 잘하면 많이 안 까일 수도?"




종대가 말하는 희소식에 oo는 정말요? 하고 웃으며 되물었다. 종대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더니, 무리하지 말라며 oo의 어깨를 톡톡 쳐주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oo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는 아주 조금, 여유있게 계속 디자인을 해나갔다. 


곧 그래픽 디자인 계획안을 발표하는 회의 시간이 다가왔고, oo는 손목 시계를 바라보며 이제 슬슬 회의실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프레젠테이션때 필요한 물건들만 간단히 챙기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걸 보고 oo는, 잠깐만요! 하고 외쳐대며 앞으로 뛰어갔다. 다행이 안에 있는 사람은 친절을 베풀어, oo가 탈 수 있도록 열림 버튼을 눌러주었고, 그 사람은 뜻 밖에도. 




"어? 팀장님... 이셨구나. 감사합니다."


"음, 뭐야? oo 씨 똥 씹은 표정인 걸? 나 보니깐 기분이 별로 안 좋나 봐요."




물론 oo는 당연한 수정의 말에 찔렸지만, 여기서 맞다고 하면 바로 된통 혼날 게 뻔히 보였으므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아니에요, 하고 웃어보였다. 사회 생활을 하는 게 참 힘들다는 생각을 머릿 속으로 하며. 




"프레젠테이션 준비는 잘 마치셨어요?"


"네? 아, 음... 어느 정도 잘 끝낸 것 같아요. 그래도 긴장은 되네요, 하하..."




어색해진 분위기에, 타이밍 좋게 엘리베이터가 회의실이 있는 8층에 도착했다. oo와 수정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함께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고. oo는 앞에 있는 노트북으로 달려가 usb를 꼽고, 머릿 속에 있는 발표 내용들을 천천히 정리하였다. 안 그래도 빨리 끝내려고 대충 했는데, 말이라도 똑바로 잘 해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그러니까, 고객님들이 원하시는 데로 진행한다면 경제적으로 살짝 더 부담이 되겠지만, 제품이 더 많이 구매될 것으로 보아 C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oo는 자신의 발표 파트가 끝나자마자, 바로 수정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게도 표정이 나쁘지 않았고, 종대의 말대로 많이 까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남은 회의를 듣고, 메모지에 간략히 회의 내용을 요약하였다.




"후..."




어떻게 끝난 지도 모른 회의에, oo는 직원들이 모두 빠져나간 틈에 책상에 볼을 파묻었다. 발표할 때 긴장을 너무 했어... ooo, 바보! 완전 바보, 등신!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콩콩 때린 oo는 뒤에서 누군가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파묻고 있던 얼굴을 재빨리 들어 고개를 뒤로 훽 돌렸다. 




"아, 종대 씨네... 놀랐잖아요."


"혼자 뭐 하고 있는 거에요? 왜 회의실에서는 안 나오시고."


"오늘 프레젠테이션 망한 것 같아서요. 물론 정 팀장님이 나 안 까신 거 보면 그나마 낫다고 생각 들긴 하지만."








종대는 oo의 옆자리에 의자를 뺀 후 그 자리에 앉으며, 난 괜찮던데? 하고 눈꼬리를 휘며 웃어보였다. 정말요? 하고 묻는 oo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oo 씨가 너무 걱정하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잘하셨어요."


"그렇구나아, 고마워요. 우리 이제 나가봐요. 밑으로 내려가서 또 일 해야죠."




조그만한 oo에게 풍겨나오는 듬직함에 종대는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oo를 뒤따라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