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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설렘주의 (完)

[오세훈 빙의글] 설렘주의 02




[오세훈] 설렘주의













"정 팀장님, 여기 기획안 다시 작성한 겁니다."


"음, 어디봐요-."




꼬고 있던 다리를 반대 쪽으로 꼬더니, oo가 써온 기획안 리스트들을 꼼꼼이 살피는 수정이다. 이 여자가 바로, 어제 oo가 세훈에게 나쁘다고 있는 욕 없는 욕을 한 팀장이다. 수정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는 잘했어요, 하고 oo에게 기획안을 넘겨주며 이대로 진행하라 한다. oo는 예, 하고 대답을 하고는 수정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팀장실에서 나왔다. 하여간, 저 싸가지!


그래도 한번 더 튕구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oo는 기획안을 들고 혼이 빠져나간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 오세훈 보고 싶어. 




"전화라도 해볼까, 지금 점심시간이겠지?"




컴퓨터로 시간을 확인한 oo는 세훈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시간인 지 확인을 한 후, 가방에 들어있는 휴대폰을 꺼내 익숙한 세훈의 번호를 입력해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신호음이 가지 않아, 반가운 세훈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응, 왜? 팀장이 또 뭐라고 그랬어?"


"어? 아니 아니. 기획안 다시 써서 갔는데, 이번에는 지 마음에 드는 지 통과시켜줬어. 한번 더 안 튕궈서 다행이야. 너 점심 먹었어?"


-"어디보자… 먹을 시간 없을 것 같네. 너는?"


"무슨 급한 일을 하길래 밥도 못 먹어? 안 돼! 때려치우고 빨리 나가서 밥 먹어. 내 말 들어, 알았지?"




세훈이 끼니를 굶는 건 싫은 지, oo는 빨리 밥 먹으라며 세훈을 재촉했다. 세훈은 oo의 재촉에 알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회사 1층에 있는 편의점으로 가,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를 산 후에 계산을 한다. 




-"어, 어어! 뭐야, 너 편의점이지?"




가만히 있던 oo의 목소리가 갑자기 귓가에 울려퍼지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편의점인 걸 알았는지, 왜 편의점에 가냐며 우울한 말투로 말했다. 표정은 안 봐도 뻔하지, 건들면 울 것같은 oo 특유의 표정.  




"오빠 진짜 시간 없어서 그래. 저녁에 oo랑 만나면 그때 밥 먹을게."


-"그러면 퇴근하고 우리집으로 와. 내가 밥 해줄래."




내새끼 완전 마누라 다됐네? oo의 말이 너무 기특해 보였는지, 세훈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겠다는 세훈의 대답을 듣고서야, 전화를 끊는 oo다. 오늘 일 빨리 끝내야겠네. 







***







"오세훈 나쁜 놈."




저녁에 밥을 해주기로 했던 oo인데, 세훈과 웃고 떠들기는 커녕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벽에 걸려진 시계로 잠깐 눈을 돌린다. 11시 반, 12시만 넘어 봐… 가만 안 두겠어. 







oo는 일부러 세훈의 업무에 방해라도 될 까봐, 아까 전화 이후로는 세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혹시 세훈이 밥 먹기로 한 걸 까먹기라도 한 건가? 원래 퇴근 시간이 6시인데, 11시가 넘어서까지 안 온다는 건 빼박이니까. 







***







띠리릭-



어…? 내가 잠들었었던가. 잠에서 깨어난 oo는 기지개를 쭉 키고, 시계로 눈을 돌린다. 뭐?! 새벽 두 시? oo는 재빨리 현관문 쪽으로 쿵쿵 하며 걸어가더니, 자신의 얼굴을 보고 웃고 있는 세훈과 마주하였다. 이 자식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멀리서도 풍겨오는 술 냄새를 보아하니, 회식이라도 거하게 걸친 모양이었다. oo는 지금 화가 단단히 나있는 상태였다. 세훈은 그런 oo의 눈치를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화난 oo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라도 말 해봐. 왜 입 꾹 다물고 있는데?"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




이상하다. 분명히 이 상황은 내가 화낼 상황인데… 왜 세훈의 사과 한마디만으로 화났던 게 금방 풀어지는 건지. oo는 한발자국, 한발자국 발을 떼어 세훈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너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어. 난 오세훈 믿어. 어쩔 수 없던 상황이였단 거, 거절해도 소용없는 상황이었던 거…"




세훈과 오랫 동안 연애를 하다보니, oo는 무슨 상황이던지 이해가 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세훈이 회식을 어쩔 수 없이 거절 못 하는 상황이 머릿 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오빠가, 우리 oo랑 한 약속도 못 지키고."


"아냐, 그만해. 왔으면 된 거야."




oo는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 담긴 세훈을 올려다보고는 손을 들어 세훈의 머리를 매만졌다. 그러다가도 세훈을 두 손으로 꼭 안아, 허리에 손을 둘렀다. 세훈의 가슴 언저리에 고개를 팍 묻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술냄새가 대부분이었지만, 간간이 세훈의 향도 같이 맡아졌다. 







***







아침부터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은지, oo는 그 조그마한 몸으로 결재서류 열 몇개를 들고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이리저리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오늘따라 일이 많네… 오늘은 완전 야근 각이구만. 팀장실로 올라가려는 oo는 6층을 꾹 누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거 또 튕기면 어떡하지? 이제 아이디어도 더이상 없는데. 




"어, 안녕하세요. oo 씨."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스더니, 종대가 특유의 웃는 얼굴로 oo에게 인사를 하며 엘리베이터에 탄다. oo는 종대와 똑같이 꾸벅,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였다. 종대는 슬쩍, oo의 품 안에 꽉 찬 결재서류들을 훑어보더니, 도와줄까요? 하고 묻는다. oo는 결재서류들 쪽으로 시선을 두다가도 고개를 내저으며 말 한다. 




"이거 팀장실에 가져가는 거거든요. 종대 씨도 같이 가시면, 팀장님께 같이 까이실 거에요."


"아, 정 팀장님이요? 뭐… 그 분이 워낙 까다로우시긴 하죠."




oo는 종대의 말에 적극동참 한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종대는 그런 oo의 모습을 보고는 웃음이 팡 터져버렸다. 그러다가 6층까지 다 왔는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종대는 열림 버튼을 꾹 누른 채로 조심조심- 이라 말하며 oo가 완전히 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고마워요, 종대 씨."


"아니에요. 정 팀장님께 까이지 말고, 수고해요."




oo는 종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팀장실 앞까지 걸어갔다. 음, 노크를 해야되는데 손이 없고. 이거 큰 일이네? 당황한 oo는 어떡하지, 만 무한반복하다가 결국 구두 굽을 이용해 문을 콩콩 찼다. 안에서는 들어오세요, 하는 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나저나, 이 문은 또 어떻게 연데?


한숨을 쉰 oo는 몸을 요래저래 만들더니, 한손으로 최대한 빨리 문을 순식간에 열어버렸다. 이까지는 좋았지만, 문을 열자마자 쏟아진 결재서류들에 팀장실 안에 있던 수정의 표정은 잠시 찌푸려졌지만, 개의치 않고 그 쪽으로 다가와 결재서류들을 함께 주워주었다. 




"내가 일을 너무 많이 시켰나요? 미안해요."




어라? 오늘따라 뭔가 친절하다?


oo는 미안하다는 수정의 말에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에요! 하고 크게 소리를 쳤다. 곧 의자에 앉은 수정에게 결재서류를 하나하나씩 보여주며,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다 좋은데, 예산이 너무 깨지지 않을까요?"


"아, 그것은 걱정 안 해도 되실게, 미리 예비 프로젝트를 진행 해보았습니다. 그때는 예상했던 것보다 수입이 크게 증가했었구요."




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를 한장 한장 넘겨보았다. 그러더니, oo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는 잘했어요, 라고 말하였다. 잠깐만, 이 팀장 왜 이런데, 갑자기? 나한테 왜 이렇게 칭찬을 해대? 저번에는 두 번째로 기획안을 받아주질 않나. oo는 수정이 슬슬 무서워지려고 하였다. 그리고는 재빨리 수정을 피해 빠른 걸음으로 팀장실에서 나왔다. 




"사람이 갑자기 착해지면 무섭다니까…?"




엘리베이터를 탄 oo는 버튼을 꾹 느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칭찬을 해도 무서워, 저 사람은…







***







세훈은 마우스 옆에 있는 커피를 꿀꺽꿀꺽 마셔 넘겼다. 옆에서 세훈을 지켜보던 준면은 커피를 생수처럼 마시냐며 세훈을 꾸짖었지만, 잠이 너무 오는 관계로 커피를 이렇게라도 마시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세훈의 상태였다. 준면은 그런 세훈을 보더니, 어제 안 잤냐? 하고 물어온다. 





"잤는데, 2시간 정도?"


"그럴 바엔 아예 밤을 새지 그랬냐. 그게 더 나을 텐데."


"내 말이 그거다."


"일하느라고?"





세훈은 고개를 내저었다. 준면은 그럼 뭐 때문에 2시간 밖에 못 잤데? 하며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세훈을 바라본다. 세훈은 프린터 앞에 서서, 기획안이 나오는 걸 기다리며 입을 연다. 





"어제 oo한테 잘못한 게 있어가지고, 가서 비느라고."


"회식한 거 때문에?"


"응, 내가 거절 못 했잖아. oo랑 같이 밥 먹기로 약속했는데."





세훈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준면은 네가 잘못했네, 하며 세훈을 꾸짖는다. 자신의 편을 안 들어줘서 좀 슬프긴 하지만, 자신이 잘못한 게 맞으니깐 세훈은 내가 등신이지, 하며 주먹으로 머리를 퍽퍽 쳐댔다. 





"그래. 네 자식은 맞아도 싸. oo 씨 울진 않았어? 우리 귀여운 oo 씨가, 오세훈 따위한테 버림 받다니."


"야, 너 말은 똑바로 해라? 우리 귀여운 oo 씨라니. 그리고 나 버린 적 없거든?"





세훈은 종이들이 다 복사가 됐는 지, 프린터에서 종이들을 꺼내 종이 뭉텅이를 준면에게 넘겨준다. 준면은 이게 뭐냐는 듯 아무 말없이 세훈을 바라본다. 





"벌이야. 5층가서 주고 와."





준면은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세훈을 바라보고는 딱히 거절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준면이 사라지자, 세훈은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세훈 씨!"


"어우, 깜짝이야."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대고 놀래켜오기에 깜짝 놀란 세훈의 시선은 그 쪽을 향한다. 세훈의 앞에는 진리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세훈의 직장동료인데, oo가 매우 싫어한다. 이유는 세훈에게 집적 거리는 게 다른 동료들 보다 훨-씬 심하기 때문에. 


머릿 속에서 친하게 지내지 말라는 oo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세훈은 최대한 진리 쪽에서 떨어져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밖에 덥죠? 오늘 같은 날에는 냉면이 딱인데… 저랑 나중에 같이 점심 드실래요?"







생각해보니 진리의 말대로 이런 날씨에는 냉면이 딱이었다. 그래도 속상해 할 oo의 모습을 떠올리니, 냉면을 먹는 한이 있어도 진리와 함께 먹을 순 없었다. 우리 oo도 냉면 좋아하는데… oo 보고싶다. 





"아, 저 냉면 싫어해서요."


"음, 그러면 딴 거는 어때요? 세훈 씨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없어요. 그리고 진리 씨가 저한테만 이렇게 물어보시는 거, 저 좀 부담스러워서요. 자제 좀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여자는 내가 여자친구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집적 거리는 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세훈은 그냥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곧 진리의 표정이 살짝이 굳어졌지만, 진리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네에, 하고 세훈에게 고개를 숙인다. 하루종일 oo랑만 있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