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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1/설렘주의 (完)

[오세훈 빙의글] 설렘주의 09




[오세훈] 설렘주의













어쩜 이렇게 걸음이 빠른 지, oo는 새삼 자신이 달리기가 이렇게 빠른가 싶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짐이 왜 이렇게 안 나오냐고 찡찡 거리다가, 밖으로 나와 세훈에게 전화를 걸며 빠르게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oo는 원래 다음 날 오전 비행기였지만 종대가 특별히 바꿔준다면서 그 전날 오후 비행으로 바꿔준 탓에 예정보다 하루 더 일찍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 보여... 어디 있어?"


-"난 너 보여. 움직이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




가만히 있으라는 세훈의 말에 oo는 정말 중간에 딱 서서는 얌전히 세훈을 기다렸다. 누군가 어깨를 톡톡 치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활짝 웃고 있는 세훈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뭔가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마음에 oo는 짐도 내팽겨둔 채, 세훈을 꼭 껴안아버렸다. 




"야아, ooo 씨, 사람들 다 쳐다 봅니다."


"괜찮아... 나 진짜 너무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내일 왔으면 아마도 죽었을 거야."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취리히는 어땠어? 재밌었어?"


"응. 재밌었고, 엄청 예뻤는데... 오빠랑 가면 더 좋았을 걸. 너무 아쉬웠어."




세훈은 자연스럽게 oo의 짐을 다 챙기더니, 일단 나가자며 나머지 손으로는 oo의 손을 꼭 잡았다. 세훈을 만난 이후로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던 oo는 앞도 쳐다보지 않고, 세훈 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어어, 이제 그만 봐. 나 닳겠어. 앞 보면서 가야지, 다쳐."


"안 다쳐, 내가 무슨 어린 앤 줄... 악!"




앞에 보고 걷자며, 세훈이 oo의 얼굴을 앞 쪽으로 돌리니, oo는 마치 청개구리처럼 싫다며 다시 세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돌리자 마자 계단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걷던 oo는 넘어질 뻔 하였다. 세훈이 재빨리 oo의 어깨를 감싸안아 다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세훈은 조금 표정을 굳히고는 다치잖아, 하면서 oo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







oo가 스위스에 출장을 갔다오고 난 다음 날부터는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휴가였다. 내일 부터는 출근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oo는 오랜 만에 둘이서 술이나 마시자며, 세훈의 집으로 양 손 가득 술을 사왔고. 세훈은 안 그래도 술이 약한 oo에게 괜찮냐며, 눈을 마주치며 물었고. oo는 아니, 하며 해맑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어차피 취해도 오빠 집인 걸,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음? 내가 무슨 짓하면 어떡해."


"...문 잠구고 자야겠다."




아주 당연하게, 여기서 자고 가면 되지-. 하며 웃던 oo의 표정이 순간 아주 진지하게 바뀌어져 버렸다. 무슨 짓이라니, 설마... 물론 세훈은 농담으로 얘기했지만, 진지하게 받아드린 oo는,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문 잠구고 자야겠다며 표정을 굳혔다. 




"장난이야. 내가 널 어떻게 건드려. 우리 예쁜 내새끼를."







"그치? 그러면 우리 맛보기로 맥주부터 마시자-."




맛보기라고 할 수도 없었다. 맥주 두 캔에 벌써 뻑 가버린 oo였으니깐. 헤롱 헤롱- 거리며 소주 병을 붙잡고 통째로 입 안에 흘려보내는 oo의 행동을 간신히 막고는 한숨을 쉬었다. 이 기분은 꼭 어린 아이를 키우는 듯한 아빠 같았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KO 해버린 oo를 공주님 처럼 안아서는 침대에 얌전히 눕혀주었다. 다 마시지도 못 할 거면서 왜 이렇게 많이 사왔는 건지. 




"절대로 술 맥이면 안 되겠네."




거실을 대충 치우고는, 다시 oo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oo는 어린 아이처럼 새근 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당연히 밑에서 자려고 바닥에 누웠건만, 훈아- 하는 oo의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하며 몸을 들어올려 oo를 바라보니, 옆에 누우라는 듯, 자신의 옆 자리를 손으로 톡톡 치고 있었다. 




"같이 자자."


"너 그거 엄청 위험한 말이니깐 함부로 하면 안 돼."


"너한텐 해도 돼. 얼른 와."




잠을 자고 나니, 발음이 아까 전보다는 확실히 뚜렷해져 있었다. 세훈은 하는 수 없이 침대로 올라와 oo에게 팔 베게를 해주고는 눈을 꼭 감고 있는 oo의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입을 맞추자마자 oo가 눈을 뿅 하고 뜨더니, 이번에는 oo가 먼저 세훈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조금은 긴 키스가 이어지는 것 같더니, 자신이 먼저 키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숨을 참기 힘들었는지, 세훈의 어깨를 톡톡하며 쳤다. 




"안 돼, 이제 자. 나 더 못 해."




한 번 더 하자는 oo의 뽀뽀 세례에도 세훈은 안 된다며, oo의 입술을 손으로 꾹 막아버렸다. 이렇게 키스를 계속하다보면 다른 걸 원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세훈은 얼른 자라며 oo의 이마에 살짝 버드 키스를 해주었다. 




"얼른 자, 사랑해."


"으응, 나도 사랑해."







***







그 동안 많이 피곤했던 건지, 세훈과 oo 둘 다,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일어나지 못 하였다. 서로 꼭 껴안은 채로 늦은 아침까지 잠을 청하고 있는데, 세훈이 먼저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귀엽게 자는 oo의 모습에, 꼭 결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참 묘했다.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담은 채, oo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침대에 일어나서는 부엌으로 와 물을 마셨다.




"해장국이라도 끓여야겠네."




물론 세훈 자신은 취할 때까지 마시진 않았지만, oo가 제대로 취할 때까지 마셨기에 콩나물국이라도 끓이기로 하였다. 집 안 곳곳이 나는 콩나물국 냄새에, oo도 이제서야 눈이 떠졌다. 두 눈을 손으로 비비며, 거실로 나온 oo는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훈아... 하고 세훈을 불렀다. 세훈은 응? 하고 대답하며 oo에게로 걸어가, 잔뜩 헝클어진 oo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배고파..."


"풉, 밥 먹을래? 콩나물국 끓였어."


"응, 완전 좋아..."




아직도 조금 잠겨있는 목소리로 완전 좋다며, 의자에 앉아 식사를 기다렸다. 그러다가도 oo의 눈에 세훈의 살짝 부어있는 입술이 눈에 들어왔는 지, 다시 한 번 세훈의 이름을 불렀다.




"너 입술 부었어."


"니가 더 많이 부었어."


"응? 왜 부었지?"







세훈은 하마터면 정말 크게 웃을 뻔하였다.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정말 진지하게 왜 부었지? 하면서 혼잣말을 하는데, 진짜 5살 짜리 꼬마 같아 보였다. 순간 바로 입을 맞춰버릴 뻔 하였지만, oo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주고는 얼른 먹으라며 미소를 지었다. 




"훈아, 우리 이러고 있으니깐 꼭 결혼한 것 같다. 그치?"


"응, 빨리 결혼하자."




oo도 세훈과 똑같은 생각을 했는 지, 결혼한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세훈은 응, 하고 대답하며 빨리 결혼하자고 말했는데, oo는 그 말이 엄청 부끄럽게 들렸는 모양이었다. 국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밥만 먹고 있는 걸 보아하니. 세훈은 부끄러워 하는 oo의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